동시대 가장 미스터리 하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작가 뱅크시(Banksy). 그는 '얼굴 없는 작가'로 통한다. 그동안 그의 신상에 관한 다양한 보도가 있었으나 현재까진 1974년 브리스톨 태생의 영국인이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11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뱅크시'(2020)에서도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화면에선 모자이크로 처리된 채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의 방향은 명확하다. 부조리하고 억압된 세상을 고발해온 뱅크시 작업의 문화예술사적 의미를 약 2시간에 걸쳐 짚어본다. 동시에 제도권 내 공공미술관 및 상업전시들과 미술품시장이 안고 있는 자본논리와 허세, 그리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공공성의 가치 또한 살핀다. 바로 여러 증언과 특유의 직관적 작업을 통해서다.
뱅크시는 도시 곳곳의 벽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특정한 의도가 불특정 수용자에게 자연스럽게 전파되는 그라피티를 조형의 틀로 삼는다. 범주는 정치, 사회, 환경을 아우른다. 주제는 자본주의, 반전, 평화, 인권, 권력, 기아, 난민, 차별, 탐욕, 위선, 절망 등 폭이 넓다. 화법은 주로 패러디와 차용을 통한 조롱과 풍자다. 야유의 대상엔 자본주의 체제에 잠식된 미술계도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반전과 평화는 뱅크시 작업의 핵심이다. 그는 지난 2005년 이스라엘이 2002년부터 건설한 요르단강 서안 분리 장벽에 '풍선을 든 소녀', '꽃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 '방탄조끼를 입은 비둘기', '페인트 통을 들고 있는 소년' 등의 벽화 9점을 남겼다. 2017년엔 베들레헴 인근에 군사적 갈등지역 최초의 호텔인 '월드 오프 호텔'(The Walled-off Hotel)을 열었다. 이는 지금도 유효한 분쟁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의 감옥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을 통해 전쟁의 역사를 종식하고 평화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2006년 뱅크시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포로 모습의 인물상을 미국 캘리포니아 소재 디즈니랜드에 세워 공권력에 의한 인권문제를 지적했다. 관타나모는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 만(灣)에 설치된 미 해군 기지 내 수용소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고문과 인권 침해가 자행됐다는 증거가 여럿 발견되며 최근 폐쇄 논란이 일고 있다.
뱅크시의 날카로운 시선은 권력과 권위에 대해서도 예외 없다. 그는 노상방뇨 중인 경찰을 그린 작품을 통해 제복 뒤에 숨겨진 권력의 음험함과 가식의 가면을 벗겨 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바주카포를 들고 있는 모나리자로 둔갑시키거나 엉덩이를 드러낸 모습으로 표현해 명작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005년 3월부터 메트로폴리탄, 루브르, 대영박물관 등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벌인 가짜 그림 걸기 이벤트는 미술계 권력과 그들만의 시스템을 조롱한 사례로 꼽힌다. 관람객은 물론 미술관 관계자들마저 끝내 알아차리지 못해 비웃음을 샀던 이 일화는 '미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기 위한 뱅크시의 당돌한 기획이었다.
뱅크시는 자본주의 미술시장에 대한 공격적 성향도 드러내 왔다. 2018년 그의 대표작 '풍선과 소녀'가 약 16억원에 낙찰되는 순간 액자 속 그림이 '자폭'한 작품 파쇄 사건이 한 예이다. 영국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에서 벌어진 이 소동은 돈으로 작품의 가치를 매기고 환산하기 바쁜 미술 시장에 경종을 울린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뱅크시의 작품 '그림 경매'에서처럼 엉터리 그림도 마구잡이로 구입하는 세태를 꼬집으며 무명의 예술가 지망생이 어느 날 갑자기 대형 스타작가로 둔갑돼 '돈만 많은 바보들'에게 그림을 팔아치우는 게 가능한 현실(작금의 한국도 비슷한 상황이다)을 비꼰 작업의 연장이다.
이 밖에도 뱅크시는 'CCTV'라는 작품으로 감시받는 현대사회의 오늘을 말하고, 네이팜탄에 놀라 발가벗고 길 위를 내달리던 사진 '베트남소녀'를 맥도널드의 손에 이끌려 걸어 나오는 장면으로 바꿔 인간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 지배구조에 의해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을 주문하곤 했다.
뱅크시의 작업에 대해 일각에선 선동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모든 것이 계획된 쇼라는 주장도 나온다. 자본주의를 저격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이 그 어떤 작가 작품보다 고가로 판매되는 아이러니의 주연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줄곧 엘리트주의에 반대한 대중성의 부각을 통해 소외된 객체들의 부활을 노려왔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다. 그의 작업이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만으로도 행위와 현상의 긍정성은 퇴색되지 않는다. 적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몸 사리며 회피하기 급급한 시대에서 당대 현안에 대해 서슴없이 발언하는 용기와 배짱은 인정해줘야 한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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