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의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비영리 공공기관으로 등록된 사립미술관은 모두 179개다. 국·공립 포함 전체 미술관(260여개)의 약 70%에 해당한다. 한국 미술의 근간이자 문화예술향유의 구심점이라는 점에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이다.
사립미술관은 운영주체별로 기업(법인 및 재단)에 의해 만들어진 미술관과 개인이 설립한 미술관으로 나뉜다. 삼성문화재단의 리움 등이 전자에 해당된다. 디지털 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위상을 갖춘 아트센터나비를 비롯해 금호미술관, 영은미술관, 대림미술관, 세화미술관, OCI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 등도 여기에 속한다.
개인(미술전문가, 컬렉터, 작가 및 유족 등)에 의해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주요 미술관으로는 토탈미술관을 꼽는다. 현대미술분야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1976년 이후 지난 45년간 문화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오랜 시간 작가 발굴과 미술 인구의 저변확대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사비나미술관(1996~)과 큐레이터의 산실이기도 한 모란미술관(1990~)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미술관은 사립미술관의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하며 한국 현대미술문화를 이끌어온 축이다.
이외에도 국·공립 문화예술시설의 부족한 틈을 채우고 공공적 기능을 도맡아온 사립미술관은 적지 않다. 1995년 세워진 성곡미술관을 포함해 환기미술관, 해든뮤지엄,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시안미술관, 안상철미술관, 쉐마미술관, 김세중미술관, 정문규미술관, 엄미술관, 간송미술관 등이 그 예이다.
이 미술관들 또한 작품의 수집·관리·조사·연구·보존·전시·교육이라는 미술관의 기본 책무에 충실하면서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 사회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 한국 문화예술의 저변확대 측면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의의를 지닌다.
이처럼 사립미술관은 특정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재'에 가깝다.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것'인 셈이다. 그러나 사적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사립미술관의 다수는 만성적 '위기'에 처해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재정적 어려움이다. 열악한 재정은 운영의 불안전성을 촉발할뿐더러,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실현에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는 미술관을 통한 창의의 지평을 넓히거나 건강한 문화예술 보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물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꽤나 인색한 편이다. 국가와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육기관에 걸맞은 대우와는 거리가 멀다. 10년 새 두 배나 증가한 공립미술관 건립 지원과 영리목적의 아트페어까지 세금을 쓰는 양태에 비하면 그 심리적 격차는 매우 크다.
실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란 소수의 인력과 종사자들의 인건비, 공간 운영에 관한 직접경비의 일부에 불과하다. 더구나 대개는 공모로 진행되는 경쟁구조인데다 역시 공모방식을 통해 위촉된 '비전문가들'의 심사로 인한 낭패(기관 특성 몰이해, 일괄적 배분 등)도 경험하기 일쑤다. 어쩌다 운 좋게 선정된들 규모 면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사실상 전시 한 번 치르기에도 턱없는 액수다. 그나마도 '코로나19'로 인해 쪼그라드는 추세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 모든 운영예산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다. 전시 한 번 개최할 때마다 지출되는 아티스트피와 운송비 등의 기본적인 비용조차 사비로 충당한다. 몇천원 남짓한 입장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지역민은 그 몇천원에서도 할인을 받거나 무료다) 때문에 학예사들이 하는 일이란 주로 공적 예산을 받기 위한 기획안 작성이다. 보다 고차원적인 전문성 확보에 공들일 시간에 선정 여부마저 불분명한 사업계획서 짜기에 바쁘다. 한해의 운명이 그것에 달렸기 때문이다.
사립미술관의 순기능을 인식한다면 정부와 지자체는 보다 공격적인 지원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인력 지원 사업 확대를 비롯해 종사자들의 안정된 근무환경을 보장하는 정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며, 비대면 전시에 맞는 환경 조성 지원(온라인 특성화 프로그램 구축, 온라인 마케팅 등)에도 손을 놓아서는 안 된다.
특히 세계 유수의 미술기관들이 앞다퉈 한국에 상륙하고 있는 최근 상황으로 인해 사립미술관의 위기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들을 보호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수다. 미술관 출연금에 대한 재화적 가치의 인정, 상속세의 물납(物納) 제도화, 보조사업에 대한 미술관 자부담 경감 등의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비록 운영자의 사명감과 남다른 열정이 사립미술관의 설립 동기이자 지속의 이유이나, 그것은 우리가 사회적 공기로서 높이 살 부분이지 공공의 자산을 함께 지켜나갈 의무를 배척할 이유가 되진 못한다. 사립미술관이니 개인의 당연한 희생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한국미술의 비전을 제시하고 선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그들의 존재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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