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철의 쉬운 경제]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다보니 저녁은 사무실 근처에서 때우고 일요일에도 밥집 찾아다니는 시간이 아까워 김밥 싸들고 출근하던 때가 상당기간 있었다. 개인에게 할당된 업무추진비(법카)는 월16만원으로 당시 청국장 3~40그릇 값에 불과하지만 야근수당 없이 일하는 직원들 밥값에 보탰다. 그즈음 있었던 외부감사가 끝날 무렵 "청국장 집에 무서운 인사들이 들이닥쳐 영수증과 주방에 보관했던 주문전표 내역을 대조했다."는 청국장집 주인의 푸념이 귀에 스쳐갔다.
밤늦게 집으로 걸어가면서 무엇인가 찝찝한 생각이 들었다. 무소불위의 힘을 자랑하는 헌법기관에서 그리 하찮은 일을 벌이다니 세금낭비라는 걱정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쓸데없는 일을 벌이거나, 두리번거리는 공직자들이 들끓어 나라 빚이 늘어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들이 업무처리 과정과 잔돈푼 사용내역을 물샐틈없이 훑은 까닭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혼내줄 꺼리를 억지로 찾으려 했다는 의심이 들었다. 위인지 아래인지, 밖인지 안인지 모를 어떤 '어둠의 자식'이 친분 있는 감사관에게 무조건 혼내라고 귓속말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낯간지러운 줄 모르고 청국장 주문내역까지 대조했다는 잡스런 생각이 지나갔다.
사실, 나 자신 뭣하나 내세울 것도 없는데다 고분고분하지 않고 누가 뭐라 해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해왔다. 누가 압력을 가할 때도 업무의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조직이 망신당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거절했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을지 모른다고 짐작하면서 나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꼬투리 잡힐 행동은 스스로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직원들 중에 청국장에다 담배 한 갑이라도 얹어 계산하는 비리(?)를 저질렀다면 좀스러운 감사관에게 불려가 얼굴에 먹칠을 하고, 누군지 모를 어둠의 자식은 낄낄거렸을 게다.
감사팀이 철수하고 나서야 크든 작든 비리는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짜 점심'이나 '뇌물 핥기'는 한 번 시작하면 끊기 어렵다 한다. 청국장 한 그릇이라도 슬쩍하다가는 나중에 콩을 열차 떼기로 훔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개인과 기업 국가가 미래를 기약하려면 크고 작건 모든 비리는 가차 없이 뿌리를 뽑아야 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고 하고 "제 버릇 개 못준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는다. 어쩌면 그 감사관은 어둠의 자식에게 꾐을 당한 앞잡이가 아니라 크든 작든 모든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하는 정의의 사도 '형사 가제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복이란 죄가 없더라도 억지로 누명을 씌워 벌주는 일이다. 죄형법정주의 원칙 아래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면 직권남용죄를 범하게 된다. 반대로 보복이라고 생떼를 쓰며 비리를 저지르고 나서 모른 척 눈감으라는 압력은 직무유기죄를 범하라는 행패다. 특히 거물급 인사들의 비리는 작더라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확대되기 때문에 더 엄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럭저럭 흐지부지하는 꼴들이 자주 보인다.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죄를 다 같이 엄격하게 처벌하는 실천방안이 확립되어야 비로소 나라꼴이 바로 잡혀 경제순환도 순조로워지지 않을까?
주요저서
-불확실성 극복을 위한 금융투자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호모 이코노미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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