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악재는 예상범위 밖에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저축은행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2007년 10월15일, 당시 상호저축은행중앙회장), "저축은행 PF대출의 90%가 토지를 담보로 잡고 있거나 시공사가 보증하고 있다.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상당부분 회수가 가능하고 부족분은 충당금으로 흡수할 수 있다"(2008년 9월4일,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 "저축은행의 부실 PF 대출을 신속 인수하면 시장의 불안심리가 해소될 것으로 본다"(2010년 6월25일, 부실 부동산PF에 2조5000억원 공적자금 투입 당시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
금리급등과 함께 부동산경기가 곤두박질치면서 부동산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우려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난 2011년과 이듬해에 걸쳐 저축은행들을 대거 퇴출시킨 PF대출 부실사태의 재연을 걱정한다. 이미 신용경색이 시작됐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당국은 낮은 연체율 등을 근거로 현 시점에서 잘 관리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상황점검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주된 대주(자금공급 창구)가 저축은행에서 증권사, 여신전문회사 등으로 바뀌었을 뿐 익스포저 규모 등은 그때 상황을 훨씬 압도한다.
악재는 소리없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10여년전 금융시장을 일대혼란에 몰아넣었던 저축은행 사태는 정작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이 안정을 되찾고 기준금리 0%선을 유지하던 시점에 터졌다. 고위 금융당국자와 시장 관계자들은 위의 언급처럼 지속적으로 '안정론'을 설파했으나 헛수고였다. 3년여의 시간을 끌던 파국의 폭풍은 2011년 벽두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를 시작으로 금융권을 강타했고 같은 해에 15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됐다. 이듬해에도 업계 1위였던 솔로몬저축은행부터 미래저축은행까지 5개사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후폭풍은 엄청났고 아직도 그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은 채 '버전 2'의 공포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올들어 미국이 기준금리를 연 0.25%에서 지난달 3.25%로 불과 6개월만에 300bp를 올렸듯이 한국도 기준금리가 0.5%에서 3.00%로 250bp나 담숨에 뛰었고 그 여파로 부동산시장에는 경고음이 계속 커져가고 있다.
당국의 장담대로 지난 6월 기준 전금융권 PF대출 연체율은 0.50%로 2011년 당시 11.23%보다 현저히 낮다. 그러나 비은행권의 연체율은 상승추세를 그리고 있다. 여전사가 지난해말 0.19%에서 6월말 0.84%로 급등했고 저축은행도 1.21%에서 1.76%로 뛰었다. 주목할 것은 금융권 익스포저 규모가 저축은행사태 직후인 2014년 38조8000억원에서 올해 6월말에는 112조2000억원로 엄청나게 불어난 점이다. 위험 노출도가 급증한 만큼 시장불안심리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10여년전의 트라우마가 오버랩되면서 현재의 유동성 경색 국면은 어찌보면 금융회사들의 당연한 방어기제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뜻밖의 악재가 터졌다.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산하기관 자산유동화증권(ABCP)이 지난달말 만기도래했는데 강원도의 지급보증거절로 차환발행에 실패하고 부도처리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최고신용등급의 A1 증권이 순식간에 부도등급인 D로 추락했다. 중앙정부까지 지급의무가 연결되는 사실상의 지방채가 디폴트된 상황에 금융회사나 투자기관들은 물론 신용평가사들조차 크게 당황하고 있다.
문제는 이번처럼 지자체가 채무보증을 선 PF자산의 ABCP 발행잔액이 모두 1조3000억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급랭중인 부동산 PF시장에 이번 사태는 저축은행사태의 '버전 2'로 가는 트리거가 될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지난 10일 레고랜드 ABCP의 발행주관사는 첫 채권단회의를 가졌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강원도가 채무 지급을 재확약하거나 차환발행에 동의하는 시장친화적 결정을 해주기를 바랄뿐이었다. 지난 5월 개장한 레고랜드사업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일단 안정적 채무상환의 기반은 마련된 상황이며 추가 자금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일각에서는 차환발행에 있어 주변환경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 없는데도 강원도가 이례적 결정을 내린 배경으로 정치적 의도를 주목하고 있다. 도정의 주체가 현 야당에서 여당으로 바뀐 점을 보는 것이다. 신평사나 금융회사들은 지자체 보증사업에 대한 자체 안전진단에 분주하다. 이번 사태가 자칫 시장의 신용위기를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정치적 논리가 금융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생각못한 사태를 초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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