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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공공미술의 정의

공공미술의 사전적 정의는 '공공의 장소에 놓이는 미술'이다. 문화예술진흥법 등의 관계 법령에 의한 공공미술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신·증축할 경우 도시문화 환경 개선 등을 위해 건축비용의 일부를 사용해 설치되는 미술작품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생각하는 공공미술이란 자치단체장의 임기 중 성과주의와 경제 진흥 낙관론을 상징하는 물리적 증표다.

 

각 시군 및 구청, 일부 미술인들이 생각하는 공공미술은 '환경미화' 내지는 '시설물 개선'에 필요한 수단이다. 그들에겐 온 사방에 정체불명의 벽화를 그리거나 수준 낮은 조형물을 앉히며, 공간조성이란 미명 아래 어딘가에 알록달록 색칠하는 것이 공공미술이다. 여기엔 관광인프라 조성을 명분으로 포토존을 만든다며 호수와 공원, 해변에 조악한 동·식물형상을 세워 놓는 것도 포함된다. 한마디로 도시 흉물화를 부추기는 '비싼 쓰레기'다.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영향을 받는 건축주에게 공공미술은 사유재산의 활용을 억누르는 몹쓸 체계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공공미술이란 주변 환경 개선과 함께 관련 법률을 제정하는데 실질적인 동기를 부여했던 민생고 해결방안으로서의 명분마저 실종된 '그들만의 리그'요, 부당한 리베이트를 포함한 심의 담합이라는 각종 비리의 주범이다.

 

특히 시민들에게 공공미술은 무관심의 대상이거나 보편적 미감이나 정서 따위는 고려되지 않은 기괴한 시각 공해일 뿐이다. 시민들의 다수는 공공미술을 나무 한그루 심는 것보다 못한, 도시경관을 훼손시키는 원인으로 본다.

 

이처럼 공공미술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다만 그 누구 혹은 어디에서든 문화적 참여 동기 부여가 전혀 발현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은 있다. 공공미술과 관계된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음에도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 기대와 현행 제도에 대한 관련 단체들의 존속 명분 합리화, 그리고 공공미술 전문 업자들의 입김 등에 의해 수십 년간 별다른 개선이 없었다는 것 또한 동일하다.

 

그렇다면 참다운 의미로서의 공공미술이란 무엇일까. 일단 부르주아적 유산으로부터 이탈한 공공미술은 '장식'이 아니다. 대중을 위한 미술이자 대중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미술이다. 또 공공미술은 공공의 요구에 공공적 가치를 지닌 미술로 부응하는 방법이고,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사회 구성원 전체의 기억과 쟁점, 삶의 맥락을 수용하는 공공성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고 개입해 유익하게 할 것인가를 다루는 미적·사회적·문화적 고민이다.

 

공공미술은 메시지다. 단지 공공공간에 미적 가치가 있는 오브제를 들여다 놓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주목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과 함께하는 무엇이다. 물론 공공미술은 지역민과 소통하고자 하는 명확한 태도 아래 지역의 이슈와 자신의 주변 환경에 대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경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공공미술은 또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의 실천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공공성의 실현이다. 이는 가정된 이해나 특정 관심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간의 물리적이거나, 사회적인 맥락에 따라 접근돼야 하며 그 공중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목적과 방법을 토론 및 합의, 조율을 통해 전개하는 데서 출발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공미술은 많은 과제 앞에 있다. 소수 예술가들에 의한 커뮤니티 베이스의 공공미술을 비롯해 2016년 시작돼 오늘에 이르는 서울시의 '서울은 미술관'의 예에서처럼 건축물 미술작품 제도의 일환으로 유지돼 온 공공미술이 이제야 비로소 인간 삶의 질과 연결되는 '창의적 개입'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느낌도 없진 않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공공미술에 있어 공공에 대한 비평적, 사회적인 논의는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어떤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발견토록 하는 문화적 매개로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공공미술에 관한 구조와 방식을 고찰해야 한다. 어쩌면 1970년대 이후 이어진 한국 공공미술의 역사가 무상할 만큼 모든 것이 엉성하고 이해 충돌적이며 만족스럽지 못한 지금이야말로 공공미술의 의미와 역할, 가치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더불어 동시대 공공미술의 특성으로 꼽히는 물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공공의 주체인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실천적 행위로서의 변화가 더욱 가속화돼야 한다. 미술은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니라 실제 공간(장소)에서 대중들과 상호작용하는 무대가 돼야 한다. 이것이 공공미술이 나아갈 방향이고, 보다 공공미술의 정의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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