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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의 시선]20대 청년의 세번째 생존기

경기도 안양에서 유치원에 다니던 99년 6월의 일이다.

 

나와 60여 명의 친구들은 선생님들과 함께 경기 화성의 한 수련원으로 1박2일 수련회를 갔다.

 

수련원엔 우리 말고도 서울, 부천, 화성 등에서 온 또래의 친구들이 많았다. 500명은 족히 넘어보였다.

 

어린 우리에겐 다소 힘든 극기훈련을 한 탓인지 나와 친구들은 저녁을 먹자마자 모두 골아떨어졌다. 그런데 새벽에 선생님이 다급하게 깨웠다. 우리가 있던 2층의 방과 복도는 연기로 가득찼고 숨쉬기가 무척 힘들었다. 눈앞도 잘 보이질 않았다.

 

나는 잠옷을 입은채로 선생님을 따라 친구들과 미친듯이 뛰었다. 수련원에 큰 불이났다는 것은 밖에 나와서야 알았다. 눈앞에서 건물은 순식간에 불에 탔다. 그 사고로 3층에 있던 서울의 유치원 친구들 19명을 포함해 23명이 안타깝게 희생됐다는 소식은 나중에 들었다.

 

나는 그 사고로 처음 죽음이란 걸 알았다.

 

대학 2학년때인 2014년 4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1학기를 휴학하고 나는 함께 입대할 예정이었던 친구 3명과 제주도 가는 멋진 계획을 세웠다. 형편이 넉넉치 못했던 우린 비행기 대신 배를 택했다.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배였다. 태어나서 그런 큰 배는 처음 봤다.

 

군대 갈 생각은 잠시 잊고 나는 친구들과 선실 이곳 저곳을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서해바다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맛도 일품이었다. 새벽에 배에서 맞은 일출도 장관이었다.

 

아침 8시가 좀 넘었을까.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순항하던 배가 갑자기 큰 소리가 나고 덜컹거리며 멈추더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갑판위에 있던 우리는 살기위해 난간을 잡고 버텼다. 그때까지도 그 큰 배가 침몰하리라곤 전혀 생각질 못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운이 좋았는지 나와 친구들은 주변에서 몰려온 어선에 간신히 올라타 목숨을 건졌다. 우린 살았지만 선실에 있던 수 많은 사람들이 걱정됐다.

 

15년전 화성의 수련원에서 불에 타고 있는 건물을 멍하니 바라보던 모습이 오버랩됐다. 이날 배 침몰사고로 결국 304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군 시절 내내 트라우마로 괴로워했다.

 

군 제대후 대학을 졸업하고 운좋게도 원하던 직장에 취직했다. 생사의 고비를 두번이나 넘긴 나에게 탄탄대로가 열리나 싶었다. 갑자기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왔다. 코로나가 직장 초년병의 발목을 잡았다.

 

올핸 코로나도 잠잠해지는 분위기여서 8년전 그 배에서 살아나왔던 친구들과 핼러윈데이 전날 이태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곳의 술집을 거쳐 밖으로 나온 우리는 아수라장을 경험했다. 좁은 골목길엔 이미 수 많은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숨도 쉬기 힘들어 큰 사고라도 날것만 같았다.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살기위해 나는 친구들과 어떤 가게문을 무작정 밀치고 들어갔다.

 

그날 내가 있던 자리에서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또래 젊은이 156명이 안타깝게 희생됐다. 197명은 다쳤다.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1999년, 2014년, 그리고 2022년…. 서른도 안된 나이에 세번째 생사의 갈림길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나에겐 이제 더 이상 요행을 바랄 목숨이 남아 있질 않은 것 같다.

 

이 세가지 생존기가 실제 내 이야기일지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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