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두 개의 이야기

# 첫 번째 이야기. 레지던시(Residency)란 일정한 기간 동안 작가에게 작업공간을 지원하는 현재진행형 예술창작지원 공간과 프로그램을 말한다. 거주하는 특정 공간을 의미하면서도 예술교류, 전시, 학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참여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작업실 유지와 각종 기자재를 사용하는 데 있어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작가들은 장·단기 입주 기간 동안 거주 및 제작비용과 설비, 시설 등의 지원을 받는 레지던시 입주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선 높게는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하고, 절차 중 하나인 소위 '면접'이란 걸 치러야 한다.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거나 특정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도 역시 면접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문제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할 때 멀리는 제주도나 강원도, 부산과 대전, 대구 등, 그 어디라도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 주어진다면 혹은 작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제공된다면 방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번 갈 때마다 왕복 교통비만도 적지 않다. 5~10만원을 훌쩍 넘기 일쑤다. 행여 이른 시간에 면접이 잡히면 숙박비 지출도 염두에 둬야 한다. 역시 몇 만 원 이상이다. 면접 결과가 좋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씁쓸함은 오래간다. 경제적 부담에다 좌절감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공립 기관만이라도 작가들에게 '면접비'를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턱대고 떼쓰듯 달라는 게 아니다. 다양한 지원 사업에 참여한다는 건 작가들에게 돌아갈 일종의 혜택일 수도 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정책을 기획·집행하는 정부 및 지자체 산하 기관의 가치를 빛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들의 주목을 받으면 행정적 성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곤 필요 경비의 부담은 온전히 작가 개인의 몫인 경우가 많다.

 

우리 예술가들이 경제적 여유라도 있다면 이런 제안은 욕심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참담하다. 문체부가 발간한 '2021 예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소득이 전혀 없다(0원)고 응답한 예술인은 43%에 달한다. 30%의 예술인은 연평균 수입이 50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예술인 70% 이상이 매달 수입 40여만 원 이하의 빈곤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미술인의 경우 이 수입에서 작품 제작비 등을 제하면 사실상 적자다.)

 

그러니 교통비와 같은 실제 지출 비용이라도 예산에 반영하면 어떻겠느냐는 필자의 제언은 타당하다. 서류를 통과해 면접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건 어느 정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이고, 전문예술인으로서의 가능성이 유효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급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가 활발해지길 고대한다.

 

# 두 번째 이야기.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를 보호한다는 것. 그거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그들의 삶을 관심으로 지켜보고 그들의 예술이 현실에서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개선하는 일이다. '국고지원'의 취지를 잘 살려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국고지원'의 개념은 상업적 염두를 두지 않고 작업하는 작가들을 보호하자는데 있다. 조변석개하는 시장에 흔들리지 말고 자신의 미의식을 소신껏 드러낼 수 있는 자율권을 보장해주기 위함이다. 취미나 여가의 일환으로 예술 활동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예술을 업으로 하는 전문 예술인'을 보호하자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 관련 기관의 정책은 다소 다르다. 모든 국민의 예술가를 지향하는 듯 공적지원은 전문과 취미 구분 없이 이뤄진다. 심지어 멀쩡하게 운영되던 레지던시 등의 시설조차 시장이나 구청장이 바뀌면 돌연 생활문화센터로 둔갑하고 관광 시설화 한다. 어이없게도 시장진출을 위한 제도 강화가 곧 예술경영이라는 국가기관도 있다. 모두 지원 취지는 물론 '예술을 업으로 하는 전문 예술인'을 보호하자는 목적과 거리가 멀다.

 

가장 심각한 건 전문예술인 보호를 위해 마련된 제도를 악용한 여가 집단 혹은 미학적 소통이 불가능한 취미생들이 쉼 없이 들어서며 한정된 혈세를 '공돈' 받듯 타내지만 걸러낼 장치마저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산하기관들은 하루빨리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한 후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지원 혜택의 산술성에 급급해 너도나도 세금을 타갈 수 있는 현행 구조를 방치한다면 정작 받아야 할 예술인은 차별되고 그에 비례해 한국 예술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홍경한(미술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