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 전 안전교육 한다며 서류로 주는데, 그걸 보고 있을 시간이 있어요? 물 먹고 화장실 다녀오기도 빠듯한데."
모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회사와 노동자 자율로 위험성평가를 한다는 고용노동부 로드맵에 대해 묻자 한 노동자는 귀찮듯이 답했다.
실제 여력 있는 대기업들마저 서류 작업을 통해 안전 관리를 한다. 그저 사고 발생 시 사업주가 책임을 회피하고, 처벌을 면할 수 있는 방안에만 몰두한다. 여력 없는 영세 기업은 안전 교육할 시간도 빠듯해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아직 기업들은 자율보다 타율적 규제에 길들여져 있고, 안전에 대한 투자는 돈 쓰는 일로 치부한다.
노사 스스로 위험 요인을 발굴해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위험성평가'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사망 사고를 줄일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이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노사가 작업 현장에서 일일이 위험 요소들을 찾아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현장에는 제3자인 안전보건관리 감독자가 주재한다. 보다 현장을 객관적으로 보고, 독립적으로 판단해 엄격한 개선 조치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감독자에게 명령 권한이 없다. 노사가 움직이지 않는다.
고용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 후 한국노총은 "관리감독자의 권한과 여건 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 발생시 노동자 책임만 강화될 것"이라며 "관리감독자의 책임성 강화는 단순히 가이드, 교육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노동부 장관이었던 알프레드 로벤스가 1972년에 쓴 '로벤스 보고서' 발표 후 '자율 예방체계'를 구축했다. 규제로는 사업장의 안전보건에 한계가 있어 자율 규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200여 페이지 넘는 방대한 보고서 내용을 대폭 수용한 영국 정부의 결단도 있었지만 중심에는 더 이상 중대재해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노사 주체들의 책임과 개혁 의식이 있었다.
자율에는 책임과 권한이 뒤따라야 한다. 노사 스스로 하는 위험성평가가 요식 행위가 되지 않으려면 안전관리를 비용이나 투자가 아닌 생존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도, SPC 제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20대 여성도 우리의 아들, 딸들이었다.
사업주와 노동자 모두 내 소중한 가족의 일원으로 안전관리에 공동 책임을 질 때 중대재해 감축은 비로소 현실이 된다.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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