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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아무 생각 없이 만든 尹 연하장

'칠곡할매글꼴'이 화제다. 대통령 연하장에 등장해서다. 지난 2일 복수의 언론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부인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취임 후 첫 새해를 맞아 공무원들에게 연하장을 보내며 서체로 해당 글꼴을 사용했다.

 

연하장에는 "76세 늦은 나이에 경북 칠곡군 한글 교실에서 글씨를 배우신 권안자 어르신의 서체로 제작되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이 글꼴은 2020년 처음 나왔으며, 한컴과 MS오피스에도 탑재됐다.

 

'칠곡할매글꼴' 보도에 뒤덮여 금시에 잊혔지만 각계 인사들에게 발송한 대통령 신년 연하장 또한 도용·표절 논란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연하장 이미지가 상업용 사진·이미지 판매 사이트인 셔터스톡(Shutterstock)에 등록된 것과 거의 동일했기 때문이다.

 

실제 '프림야우(primiaou)'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이스라엘 작가가 공개한 기존 일러스트와 연하장 이미지는 판박이에 가깝다. 성형수술, 부처, 소주 등의 몇몇 그림을 첨삭한 것을 제외하면 누가 봐도 같은 작가의 작품이다. 도용 및 표절 의혹이 불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닮았다.

 

표절 논란에 대통령실은 "적법 계약"이라고 반박했다. "연하장에 활용된 디자인 이미지는 외국인 시각에서 우리나라 문화콘텐츠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해당 업체에서 적법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구현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로부터 연하장 제작을 의뢰받은 업체가 작가 쪽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허락받은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들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높은 예술성을 지닌 한국 작가도 많은데 굳이 외국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구태여 우리나라 외에도 일본,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 및 도시 이미지를 반복 제작해 팔아온 상업 작가의 것을 썼어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성의도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 부부가 보내는 연하장치곤 국정 철학이나 이미지 자체에 관한 정성 따위도 녹아 있지 않다. 대통령실은 "K-콘텐츠의 매력을 전 세계로 확산한다는 국정과제를 반영하여 다양한 한국의 문화, 전통, 유·무형문화재 등을 디자인화했다."고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판매를 목적으로 거래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미지를 단지 '구매'한 것에 불과하다.

 

대통령실은 표절 논란이 일자 "역대 대통령의 연하장을 다수 제작한 경험이 있는 디자인 전문 업체에 의뢰해서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보도 자료를 보면 마치 자체적으로 '창작' 한 것처럼 적어 놨다. 하지만 기존 이미지를 갖다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인터넷에 있는 이미지를 'Ctrl C', 'Ctrl V' 하는 게 '전문 업체'의 일이라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것이다.

 

이미지의 차별성과 독창성 역시 현저히 낮다. 뷰티, 한옥, K팝, K무비, K드라마, 한복, 김치 등등, 이것저것 죄다 구겨 넣어 원본에 비해 오히려 조악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이런 디자인을 연하장 이미지로 쓰겠다고 대통령실에 제안한 제작업체나, 그런 연하장 디자인을 좋다고 승인한 대통령실 수준이다. 지난해 말 우리 농민들에게 대통령 연말 선물로 보낸 '100% 수입농산물' 논란처럼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작가 이력 검증에도 소홀했다. 대통령 연하장 이미지를 그린 이스라엘 작가는 과거 일본 제국과 일본군이 사용하던 국기이자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旭日旗)'를 다른 그림 곳곳에 새겼다. 주지하다시피 '욱일기'는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Hakenkreuz)' 깃발과 같은 의미의 전범기(戰犯旗)다.

 

전범국들이 '홀로코스트'의 직접 피해 당사국인 이스라엘을 포함한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역사를 안다면 '욱일기'는 결코 등장시킬 수 없는 이미지다. 만약 독일이나 유럽에서 '피의 십자가'로 불리는 '하켄크로이츠'를 공공연하게 적시했다면 커다란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물론 유럽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일본이 전범국이고 '욱일기'가 전범기라는 것을 잘 모른다. 일본이 애써 강조해온 것처럼 '전통문양'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우리마저 그런 인식에 동조한 채 역사의식에 결함이 있는 작가의 그림을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세계사 공부에 게으른 무개념의 이스라엘 상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며 "외국인 시각에서 우리나라 문화콘텐츠를 형상화한 것"이라며 합리화했다. 나아가 그런 작가가 그린 이미지를 정부는 돈까지 주고 구입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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