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이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이솝우화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는 쥐들의 이야기가 있다. 매일 고양이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쥐들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그 소리를 듣고 쉽게 도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 자체는 너무 좋은데 막상 그 무시무시한 고양이의 목에 누가 나서서 방울을 달 지를 놓고는 모두 몸을 사렸다. 묘수이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상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들의 비겁함을 꼬집는 이야기다.
국민연금 개혁문제는 근 25년째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로 비유되는 핫이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그 민감한 연금개혁을 노동·교육개혁과 함께 3대 국정과제로 올리며 강력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정치적·사회적 파급력때문에 긴가민가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1988년 출발한 국민연금제도는 수급자부담률인 보험료율이 3%에서 시작해 5년마다 3%포인트씩 올렸으나 1998년 9%까지 늘어난 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역대 정부는 꾸준히 연금개혁안을 논의했다. 주된 쟁점은 보험료율을 순차적으로 올리고 연금수급시기를 더 늦춰 연금재정 안정성을 확보하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이다. 스웨덴,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의 보험료율 평균은 우리나라의 두배인 18.3%이고 급여율(소득대체율)은 선진국 수준인 40% 선이다. 문재인 정부때에는 보험료율을 소폭 올리되 급여율을 좀더 올리는 방향으로 검토했다가 흐지부지됐고 정치적 부담 때문에 연금개혁을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국민연금의 재정고갈문제는 출범때부터 뜨거운 감자였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문제가 세계 최고수준인 근래 들어서는 더욱 주목받는 이슈가 돼버렸다. 미래에 소수의 젊은이들이 다수의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장차 첨예한 세대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연금제도를 도입한 서구에서도 연금개혁은 번번이 기득권층이나 기성세대의 반대에 부딪히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다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정권은 예외없이 정치적 시련을 겪었다.
프랑스도 지금 연금개혁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부가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높이고 연금납부 기간을 1년 더 늘리는 내용의 개혁안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교통, 정유, 에너지, 교원 부문 등 8개 주요 노동조합은 12년만에 연합전선을 구축해 지난 19일 1차 파업을 벌였고 오는 31일 2차 파업을 준비중이다. 19일 파업에는 전국에서 112만명이 참가했고 지하철과 주유소 등 사회기간망이 마비됐다. 적잖은 국민들과 야당은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프랑스는 과거 1996년말에도 연금개혁문제로 노조와 트럭운전사 등은 물론 공무원까지 나서 대규모 파업사태를 겪었다. 마크롱정부는 집권 1기인 지난 2019년에도 42개에 달하는 연금제도를 단일화하는 개혁을 추진했으나 대대적 파업에 코로나19사태까지 겹치면서 흐지부지됐다.
우리 정부는 27일 국민연금 기금 재정계산 잠정결과를 내놓는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산정하는 것으로 이를 바탕으로 각계 의견수렴 등을 거쳐 연금체계 재구조화 방안을 수립한다. 정부산하기관들과 전문가집단은 현 구조로는 재정소진 시점이 2057년에서 1~3년 정도 앞당겨질 것이란 예측을 이미 내놓았다.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의 사회적 공론화는 발등의 불이 됐다. 정부와 정치권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시점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윤석열 정권의 명운이 엇갈릴 수도 있는 연금개혁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때의 한미자유무역협정(FTA)처럼 연금개혁에서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는 '통큰 한 수'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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