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20대 여성이 유독 더 우울한가? 우리가 제대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나요?"
박선영 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위원은 지난해 무척 바빴다. 잊혀질까 하는 때면 일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20대 여성들의 뉴스가 났다. 그때 박 위원이 내놓은 90년대생 여성노동자에 관한 연구는 허무하게 져버린 그들의 일상을 고스란히 전하며 사회에 충격을 줬다. 그의 연구를 찾는 이가 많았다.
"조사 당시 '쌍팔년도식 조직문화'라는 표현을 했던 한 여성 노동자분이 있었어요. 90년대생에게 쌍팔년도란 태어나기 이전 시대에요. 그런데 태어나기도 전에 있던 직장 문화가 여전히 자행되는 상황을 겪는 자괴감과 괴리감을 매일 겪어야 합니다. 여기서 오는 좌절은 곧 우울증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 위원은 지난해 여성노동자회와 함께 '90년대생 여성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의 시작은 코로나19 첫해 급증한 20대 여성의 자살률이었다. 국가적 재난 사태 전후 자살률이 느는 것은 전세계적 현상이지만 전체 남성 자살률이 감소하는 때 같은 여성 집단 내에서도 20대만 늘었다.
왜일까. 20대 여성 37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우울 정도에 따라 노동 이력을 비교했더니 이들의 삶이 드러났다. 71.5%의 여성이 정상 범주, 29.5%는 우울증으로 판정 받았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에 따르면 평생 동안 한 사람이 과주요 우울증에 걸릴 확률은 남성이 5~12%, 여성은 10~25%고 우울증 발병이 가장 많은 나이는 40대다. 우리만 유독 20대 여성이 우울한 셈이다. 사회초년생인 20대 청년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에 20대 여성 노동자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비합리적인 요구까지 받는다고 설명했다.
"90년대생은 물론 한 세대 앞 여성들도 성 평등 인식을 배우며 성장했어요. 치열하게 '스팩'을 쌓으며 취업한 여성들이지만, 일자리 전선에 진입하는 순간 갑자기 동등하던 남성과 사이에 갭(gap)이 생깁니다. 사무실에서 커피를 탄다거나 회의실을 정리한다거나 하며 사무실의 돌봄노동도 담당하게 됩니다. 같은 나이의 남자 직원에게는 그런 게 없지요. 당연히 자괴감과 괴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박 위원은 20대 여성에서 나타나는 자살과 직장에서의 죽음이 밀접한 연관을 가졌다고 말한다. 더불어, 혼인율과 바닥을 쳐버린 출생률도 언급했다. 그는 남성에게는 왜 '일가정 양립'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20대 여성들은 돈이 있든 없든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거부하고 있어요. 우리 가족의 생계부양자는 정말로 남자인 아빠였는가? 아니었다는 결론에 이른 겁니다. 엄마가 돈도 벌고 아이도 키웠다는 거에요. 그래서 결혼을 문제 해결을 위한 돌파구는커녕 자신의 노동권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봐요. 노동을 위해 결혼하지 않는데, 직장 내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답은 하나에요. "
더 노력하면 해결되는가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부정했다. 박 위원은 연구 결과 이직을 한 20대 여성들의 대부분은 다양한 이유로 하향취업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전공한 업계의 여성 고용률이 너무 낮아서, 여초 직군의 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서, 결혼 적령기(20대 후반) 고용을 꺼려서, 결혼을 해서 등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좋은 복지를 보장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다를까. 서울시의 성평등 임금공시제도에서는 여성 비율이 45%지만 성별 임금격차는 46.42%에 달하는 정부 투자출연기관이 발견됐다. 국내 최고 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도 성별 임금격차는 27.7%에 달했다. 임원 직급에서 조차 여성 임원은 다른 남성 임원보다 20.4% 적은 임금을 받았다.
"우리는 조건과 기회의 평등이 있다고 말합니다. 노력하면 차별을 받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실제론 오히려 대기업 내에서 성별 임금격차가 큽니다. 영세 사업장이나 중소기업에서는 모두의 임금이 바닥 수준인데다 인원 수가 적어서 승진을 해도 비슷비슷해요. 반면 대기업은 세분화된 직급과 직무에 따라 급여 차이가 큰 데, 승진도 핵심부서 이동도 여성은 더 어렵습니다. 여성이 대기업에서 사장이 되고 의사가 되고 대통령이 되면, 그럼 정말 성차별을 받지 않을까? 아니라는 겁니다."
박 위원은 '성차별은 없다' '역차별이 심각하다' 말하며 제도 마련에 게으른 일부 사람들과 정부를 규탄했다.
"20대 여성들이 도움을 청할 제도를 확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해요. 당사자는 모를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야 하고 알려줘야 한다는 거에요. 우리는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가부장제적 시스템의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의 수명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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