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경제안보차원의 金
"달러 약세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서 현재의 가격으로 금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수 있다" 미국의 통화제도 분석가이자 뉴욕 월가에서 투자 및 위기관리 전문가로 30년 이상 활동해온 제임스 리카즈가 최근 언론기고를 통해 던진 화두이다. 저서 '금의 귀환' '화폐의 몰락' 등을 통해 '금 신봉자'의 면모를 보여온 리카즈가 편협한 사고를 재연했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현 글로벌 정세 속에서 그의 주장을 도외시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세계 80여개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수십년래 가장 많은 량의 금을 사들였다. 세계금협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금 수요는 지난 2011년 이후 최대치인 4741톤으로 전년대비 18% 증가했다.눈여겨볼 것은 중앙은행들의 금매입량이 전년대비 152%나 증가한 1136톤이었다는 점이다. 1967년 이래 최대규모이며 올해도 대다수가 금매입량을 늘릴 것으로 조사됐다. 각국 중앙은행의 매입과 전세계적 '금사재기' 열풍 속에 금값도 치솟아 이달 중순에는 트로이온스당 2048달러대(6월물)에 올라 역대 최고치인 2020년 8월 2069달러의 턱밑까지 갔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는 연내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될 것이라는 예상아래 달러가 약세에 들어가는 반면 금값은 강세를 보이며 온스당 2300달러까지 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안전자산 달러의 대체재이지만 지난해 강달러 속에서 역의 추세를 보인 금의 이례적 강세 배경은 미·중 갈등 심화와 우크라이나전쟁, 신냉전체제 구축 등 글로벌 지정학적 구조 변화가 꼽힌다.
특히 비서구권 국가로의 금 집중 상황이 눈에 띈다. 미국 패권주의에 맞서는 중국은 2010년 이래 13년동안 공식적으로만 1400톤의 비축물량을 늘렸다. 전쟁과 서방의 경제제재에 갇힌 러시아도 같은 기간 1500톤을 사들였다. 터키 중앙은행의 지난해 금 비축량은 148톤이었고 폴란드, 체코 등 동구권과 이란, 인도, 아랍권 등도 공격적으로 금을 사들인 나라이다. 이들 대부분은 달러패권에 도전하는 나라들이거나 지정학적 위기가 커지고 있는 나라들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전세계 금 공급량은 지난 2010년이래 4000~5000톤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주요국 중앙은행은 최근 7년동안만에도 공식 보유고를 6% 이상 늘렸다. 최근 3년간 강달러 기조속에서도 금값이 크게 하락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각국 중앙은행들의 매집추세를 타고 가격 우상향 기조를 뚜렷이 보이고 있다는 평가이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사재기와 달리 우리 한국은행은 어떤가. 2013년 이후 보유량이 10년째 104.4톤(매입액 기준 47억9000만달러)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1월 외환보유액(4299억달러) 대비 1.1%선에 그치고 있다. 한은 입장에서는 10여년전 투자실패에 대한 트라우마도 있고 이자없는 무수익자산에 대한 거부감과 미 국채 등 초안전자산을 선호하는 리스크회피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의 금비축열풍이 단순히 투자자산의 안전수익만 고려한 것일까. '금 사재기'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아닌 듯하다. 미중갈등과 신냉전체제 구축, 공급망 재편, 자유무역 퇴조 등 국제질서 재편 속에서 지난 수십년동안 절대 안전자산으로 군림했던 달러 패권의 퇴조 상황까지 내다보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과 처리과정에서 드러난 미 국채에 대한 불신이 대체 안전자산으로서의 금을 강하게 부각한 것도 금쏠림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신흥국이나 지정학적 위험을 안고 있는 나라들로서는 이제 달러나 미 국채에 대한 맹신을 줄여가는 시점일 수 있다. 그러면 우리도 국내 금보유량을 단순 투자수단으로만 여기지 말고 국가외환시스템의 안정성을 떠받치는 경제안보 차원에서 금의 활용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보수적 자산운용에 계속 집착한다면 정부가 싱가포르 국부펀드 GIC 등의 사례를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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