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7.9)는 2년에 한번 열리는 비엔날레와 미술관 기획전을 구분하지 못했다. 규모만 커졌을 뿐 연구의 깊이는 얕았고, 당대를 바라보는 날 선 시선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비엔날레 본연의 혁신과 도전을 통한 진보적 담론 생성, 동시대예술의 새로운 방향성 제시라는 측면만 놓고 보면 낙제점에 가깝다.
그럼에도 광주비엔날레는 세인의 숱한 입길에 올랐다. 전시 내용과는 무관했다. 스스로를 B급으로 전락시킨 '비엔나소시지' 홍보 영상을 비롯한 광주시장의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상업적 전시기획사) 대표 개막식 초청 발언, 단 1회로 끝난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 등, 광주광역시와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쏟아낸 여러 논란 탓이 컸다.
이 중 지난해 2월 제정된 '박서보 예술상'은 비엔날레를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상은 '단색화'를 대표하는 박서보 작가가 한국 미술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기탁한 100만달러(약 13억원)를 재원으로 만들어졌다. 2042년까지 10회에 걸쳐 시상할 예정이었다. 지난달 6일 첫 번째 수상자도 배출했다.
하지만 미술계 안팎에선 '박서보 예술상'을 반대해왔다. 군사 독재 정권 관변 미술 권력자의 이름을 딴 상과 광주비엔날레는 정체성 면에서 맞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광주의 민주적 시민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광주비엔날레와 박서보 간 교집합은 없다. 박서보의 작업에서 광주비엔날레 창립선언문에 기술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기도 어렵다. 비상업적 성격의 비엔날레와 미술 시장에서 주목받는 거장 간의 괴리, 과한 명예욕, 개인적 성과를 위한 삶 등은 부차적인 이슈다.
'박서보 예술상'이 진행되자 일부 미술인과 시민모임 등은 행동으로 나섰다. 그들은 "4·19 혁명에 침묵하고, 5·16 군부정권에 순응했으며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외면했던 작가의 이름을 딴 박서보 예술상 사태에 대해 분노한다"며 개막식 기습시위에 이어, 온·오프라인을 무대로 한 폐지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일각에선 지역미술인들의 저항쯤으로 프레임화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젊은 기획자들을 포함한 의식 있는 미술인들의 동참도 이뤄졌다. 그러나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비판 여론이 비등한 와중에도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으로 보란 듯이 박서보 작가의 SNS 항변성 글에 '하트'를 날렸다. 누가 봐도 강행을 의미한다고 판단할만한 행위였다. 헌데 그로부터 얼마 뒤인 지난 11일, 재단은 갑자기 "올해부터 시상을 시작한 '박서보 예술상'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보도 자료를 냈다. "이미 지급한 상금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를 제외한 나머지 후원금은 박 화백 측에 반환할 계획"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시 중 폐지라는 황당한 발표와 나머지 후원금만 돌려준다는 이상한 계산법에 의아했으나 일단의 예술인들은 '환영'을 표했다. 설득력 있는 의견에 대한 응답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상을 제정하고 매듭짓는 과정에서 재단이 보인 어설프고 미숙하며 비이상적인 태도는 또 다른 잡음을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재단은 상을 만들면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 상의 명칭 및 행사와의 적합성, 역사적 의미 등에 대해 심사숙고한 것도 아니었다. 비엔날레의 공적 기능과 민주적 절차를 생각했다면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상을 만들고 없애기를 밥 먹듯이 해온 과거의 전력을 보면 예술상의 폐지 결정은 그리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었다. 상을 제정했다가 이유도 모르게 그냥 흐지부지 종적을 감추거나 상금 몇 푼이 없다고 두어 번 진행하다 엎은 예도 있었다. 제1회 때인 1995년부터 틈만 나면 그랬다. 그러니 올해 다시 '박서보 예술상'이란 걸 진행하려다 반발이 일자 한 달 만에 접은 건 사실상 그들에겐 익숙한 일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는 자신들의 고약한 '습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표출됨으로써 야기된 사태에 대해 아무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재단은 광주비엔날레를 기이한 행사로 변질시키고 혼란을 초래한 것에 관해 상세히 해명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숙의가 빠진 예술상으로 전시 자체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고 갈등과 상처만 남긴 것에 관해 미술계에 사과해야 옳음에도 침묵하고 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사달의 중심이다. 공동주최인 광주광역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게 무엇이든 최종 결정도 자신들이 한다. 엄밀히 말해 작가는 후순위다. 허나 비겁하게도 재단과 시는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논란의 모든 짐을 작가 혼자 지도록 하는 듯한 행태를 하고 있다. 미술계에 때아닌 반목과 불화를 제공했음에도 반성의 기미마저 없다. 뻔뻔하고도 실망스럽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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