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스요금 조정안이 뒤늦게 결정됐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미 산업부 에너지정책을 총괄하는 박일준 2차관이 사실상 경질됐고,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전기요금 조정안 확정 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국내에서 손꼽히는 에너지분야 전문가다. 정 전 사장은 가스공사 사장과 산업부 1차관을 지낸 뒤 문재인 정부에서 한전 사장에 임명됐으나, 전 정부에 이어 새 정부에 들어서도 한전이 역대급 적자를 기록하고 전기요금 조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여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윤석열 정부 첫 에너지차관으로 부임해 에너지 정책을 총괄했던 박 2차관은 공직자로 30여년 일하며 산업·에너지 등 주요 분야 핵심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관료 출신 에너지 전문가다. 전 정부 인사를 몰아내거나,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 실패를 떠안은 모양새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기·가스요금 조정을 했지만, 한전 적자와 가스공사 미수금 등 에너지공기업 재무구조를 개선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한전은 이번에 지난 1월 요금조정 시 반영하지 못했던 작년 연료비 증가분 중 일부를 반영했다. 한전은 2021년 이후 급등한 국제연료비 등으로 지난해 사상 최대 규모인 약 33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만 6조200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전기판매 수입이 2조6000억원 증가해, 이번 요금인상분으로 1분기 발생한 영업손실의 절반도 채우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연료가격은 안정 추세지만, 여전히 평년 대비 높은 수준이고 국제 연료가격과 국내 도입가격간 반영시차 등이 있어, 적자는 앞으로도 더 쌓일 것으로 보인다.
가스공사 사정도 비슷하다. 가스요금은 올해 1분기 동결 이후 2분이 메가줄(MJ)당 1.04원의 소폭 인상을 결정했다. 가스공사 민수용 미수금이 작년말 8조6000억원에다 올해 1분기에만 3조원이 늘어 11조6000억원에 이른다. 산업부는 당초 가스요금을 올해만 MJ당 2.6원씩 총 4차례 올려야 가스공사 경영 정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었다.
앞으로는 더 문제다. 정부는 지난 연말 '2023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한전과 가스공사 누적 적자·미수금을 현 정부 임기 만료 1년 전인 2026년까지 해소하기 위해 전기·가스요금을 단계적으로 인상해 현실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전기요금 인상분을 킬로와트시(kWh)당 51.6원으로 추산했다. 실제로는 올해 1분기 kWh당 13.1원에 이어 2분기 8.0원 인상해 총 21.1원 인상했는데, 정부 계획대로라면 앞으로 3·4분기에 kWh당 30.5원 인상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미 올해 1분기에만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가스요금이 1년 전보다 30% 넘게 인상됐다. 이같은 인상률은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1분기(41.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라고 한다.
전기요금 인가 절차는 한전 이사회 의결, 전기위원회 심의와 기획재정부 협의, 산업부 장관 인가 순이지만, 정부가 관여하면서 이미 정치권의 손을 타게 됐다. 에너지 분야 탈 정치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역대 처음으로 당정협의회에서 에너지요금을 결정하면서 정치권에 목덜미를 잡힌 상태다. 더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향후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안갯속에 들어간 형국이다. 에너지공기업의 재무여건 악화 상황은 안정적 전력 구매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고 에너지산업 생태계도 취약해질 수 있다. 이제라도 독립적인 에너지요금 조정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