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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역

[되살아난 서울] (144) 현대판 아관파천 피신로? 방공호? 북한군 땅굴? 호기심 자아내는 서울광장 지하 '숨은 공간'

지난 8일 오전 시민들이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 숨은 공간을 둘러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서울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에는 963평 크기의 거대한 지하 공간이 존재한다. 서울시가 40년간 존재를 감추고 있던 도심의 숨은 공간을 발굴해 이달 8일부터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지하 공간은 시청 앞 서울광장 지하 13m 아래 너비 9.5m, 총길이 335m, 면적 3182㎡ 규모로 만들어졌다. 서울시는 공공에서 임의로 장소 활용 방안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 숨은 공간을 되살리는 게 더 의미 있다는 판단하에 '지하철역사 상상공모전'을 실시하고 이곳을 사람들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시청 지하 '숨은 공간'의 정체는?

 

8일 오전 이재원 도시건축정류소 대표가 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에게 투어 장소를 안내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지하공간을 둘러보기 위해 '숨은 공간, 시간여행: 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에 참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전 신청 첫날인 6일 '공공서비스예약 누리집'에 접속했는데 이게 웬걸 대기 인원이 수십명이었다. 오전 9시 알람이 울리자마자 참가 신청 버튼을 잽싸게 클릭해 예약에 성공했다. 2분이 채 지나지 않아 모든 접수가 마감됐다는 문구가 떴다. 생각보다 인기가 많아 당혹스러웠다.

 

이달 8일 오전 임종현 서울시 공공건축2팀장이 태평홀 앞에서 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에게 숨은 공간 투어 전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있다./ 김현정 기자

투어 당일인 8일 오전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1층 제2청년활력소에 도착했다. 서울톡을 통해 받은 예약 내역을 서울시 담당자에게 보여줬다. 그는 참가자들에게 '숨은 공간'이라는 단어가 적힌 에코백과 생수 1병, 장갑, 브로셔를 건넸다. 투어 코스는 ▲서울시청 지하 '태평홀' ▲을지로입구 교차로 지하 '시티스타몰' ▲지하철역사 탐험대상지 '숨은공간' ▲세종대로와 서소문로의 지하 '지하철 시청역' ▲세종대로 지하 '아워 갤러리'(구 덕수궁 지하보도)로 구성됐다.

 

제2청년활력소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 투어 시작점인 '태평홀'로 이동했다. 태평홀은 일제강점기인 1926년 건립된 경성부청사의 의회 회의장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광복 후엔 서울시청 대회의실로 이용됐다. 당초 서울시청 본관엔 지하가 없었으나 2012년 신관을 새롭게 지으며 기존에 있던 태평홀을 해체해 새 건물 지하로 옮기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거듭나게 됐다. 건물을 이동하지 않고 지하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뜬구조 공법을 적용했다고 한다.

 

태평홀에서 시티스타몰로 자리를 옮겼다. 시티스타몰은 1967년 조성된 서울 최초의 지하상가인 '새서울 지하상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1960년대 후반 고속 성장기에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 주도로 지하공간과 고가도로를 만드는 도시 입체화가 진행됐고, 이때 만들어진 새서울 지하상가는 지하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시티스타몰의 지상엔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청역 방향으로 (구)미국 문화원, 삼성화재 본사, 부산은행이 차례로 들어섰다.

 

시는 "지하공간의 혁신적인 변화는 2호선(을지로입구~성수 구간, 1983년) 개통과 함께 시작됐다. 1호선이 지하철 선로와 역사를 통신구 조성과 연계해 개발한 것이었다면, 2호선은 지하철 선로와 역사를 상가(아케이드)와 이어 만든 것이 주요 특징"이라며 "이 당시 기조성된 새서울지하상가와 1977년 구축된 을지지하상가를 연결해 전국에서 제일 긴 지하상가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티스타몰 아래와 지하철 2호선 선로 위쪽에 자리한 '숨은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시는 이달 5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이 공간은 언제, 무슨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의 장소"라고 했다. 장소 공개 후 현재까지 "방공호다", "북한군이 파 놓은 땅굴이다", "시장이 유사시 쓰는 현대판 아관파천 피신로다" 등 숨은 공간을 둘러싼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방공호일 가능성 '제로(0)'?

 

장난감 도서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군데군데 검은 곰팡이가 핀 누리끼리한 벽이 눈에 들어왔다. 과일과 식물이 바구니에 든 그림이 그려진 벽지가 거칠게 뜯어져 있었고, 고장난 수도꼭지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스태프들은 시민탐험대에게 조명등이 달린 안전모와 방진마스크를 나눠줬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컴컴한 터널로 들어섰다. 바닥엔 먼지가 얇은 이불솜마냥 깔려 있었다. 스태프들은 사람들에게 먼지가 날리니 신발을 끌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터널 가운데로는 성인 두명이 양팔로 감싸 안을 수 있을 정도 굵기의 기둥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섰고, 벽에는 235m, 83m 등 치수를 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는 기둥의 용도를 ▲역에서 지하철이 정차할 때 엇갈리는 걸 막기 위한 것 ▲지상에 도로와 빌딩의 하중을 고려해 지지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했다.

 

지난 8일 오전 시민들이 시청역~을지로입구역 숨은 공간에 있는 종유석과 석순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김현정 기자

잰걸음으로 지하공간을 살피던 탐험대들은 종유석과 석순을 보고 "우와!"하는 탄성을 내뱉으며 어둠 속에서 눈빛을 반짝였다. 그 모습이 마치 '호프 다이아몬드'를 목격한 보석상인과 같았다. 종유석은 고드름처럼 천장에 길고 가느다랗게 달렸고, 그 바로 밑에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디그다'처럼 생긴 석순이 자라 있었다. 어른과 아이 머리통을 붙여놓은 것만 한 크기였다.

 

이날 투어 가이드를 맡은 이재원 도시건축정류소 대표는 "숨은 공간은 우리가 과자를 먹다 남긴 '부스러기' 같은 장소"라고 했다. 서울특별시지하철건설본부는 1983년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성수구간을 개통하며 시청역에서 1호선과의 환승을 위해 지하 3층 깊이로 지하철 선로를 건설하고 이를 새서울지하상가와 연결하기 위해 지하 1층에 지하상가를 조성했다. 당시 새서울지하상가와 을지로입구역의 바닥 높이가 달라 계단을 계획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숨은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방공호일 가능성이 제로냐'는 질문에 이 대표는 "이 공간이 환기가 안 되고, 빛도 없고, 너무 덥다. 방공호는 살려고 만드는 것인데 취지와 맞지 않다"면서 "또 방공호라면 숨어 있어야 하는데 사람 많은 지하철이 다니는 자리 바로 위에 만들었을 리 없다"고 답변했다.

 

여의도 환승센터 아래에도 서울광장 지하공간과 비슷한 곳이 있다. VIP실과 경호원 대기실, 화장실 등으로 여겨지는 곳을 갖추고 있어 방공호로 추측되는 장소다. 서울시립미술관 벙커엔 환기 시설이 있지만, 시청 숨은 공간엔 그런 기능을 하는 장치가 없어 방공호로 볼 수 없다고 시는 강조했다.

 

8일 오전 이재원 도시건축정류소 대표가 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에게 숨은 공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기둥구역을 지나면 12m 폭의 무주공간이 나온다. 이전 구역과 달리 하중이 덜한 서울광장이 상부에 있었기 때문에 기둥이 없는 형태로 설계한 것으로 시는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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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오전 서울광장 지하 '숨은 공간' 내 철문에  환기설비 관련 주의 사항을 당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현정 기자

 

무주공간을 걷다가 녹슨 철문 하나를 발견했다. 문 앞에는 덕지덕지 테이프칠이 된 A4용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출입문을 항상 닫아주세요. 문이 개방되어 있으면 환기설비 가동 때 외부공기 유입으로 터널 내 공기 배출이 되지 않습니다. 부탁해요'란 당부의 말이 적혔다. 환기 장치가 없어 서울광장 숨은 공간을 방공호로 볼 수 없다는 시의 주장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서울광장 지하 공간이 방공호처럼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공문서의 부재'다. 약 1000평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숨은 공간이 땅속에 파묻혀 있는데 이곳을 설명하는 제대로 된 공문서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현재 여의도 벙커가 방공호로 여겨지는 가장 큰 이유 또한 관련 자료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서울광장 지하공간을 지하철건설본부에서 만들었고 거기에 있던 문서가 서울교통공사로 이관됐다. 그 과정에서 자료들이 많이 손실됐다"고 말했다.

 

임종현 서울시 공공건축2팀장은 "지하철 역사를 지으면서 같이 만든 거니까 관련 자료가 남아 있을 거다"면서 "시는 여기가 언제 지어졌느냐에 방점을 두기보다는 안 쓰고 있던 곳을 새롭게 활용하기 위해 시민 의견을 모으고자 한다"고 밝혔다.

 

숨은 공간 관람 후 세종대로와 서소문로 지하, 아워 갤러리를 탐방했고, 투어는 약 50분만에 종료됐다.

 

지하철 역사 시민탐험대 투어 프로그램은 9월 8~23일 매주 금·토요일 하루 4회(11·13·15·17시) 운영되며, 공모는 내달 10일까지다. 시는 투어 행사의 온라인 접수가 당일 1분 컷으로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추석 연휴 기간에 사전 예약 대신 현장 접수를 받아 보다 많은 시민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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