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1일 청주공예비엔날레와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일제히 개막했다. 같은 달 7일에는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막을 올렸으며,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와 대구사진비엔날레도 21일과 22일 각각 문을 열었다. 오는 14일에는 지역 환경을 반영한 미술축제인 부산바다미술제가 약 한 달간의 여정에 들어간다.
비엔날레(Biennale) 홍수다.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창원, 청주 등 웬만한 지방자치단체치고 비엔날레 하나 없는 곳 없다. 전 세계 200여개의 비엔날레 중 거의 1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한국은 비엔날레로 넘친다. 가히 '비엔날레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수만 많지 동시대미술의 실험실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비엔날레는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부분 예술의 기능과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장(場)과도 거리가 멀다. 글로벌 흐름 속에서 새로운 미적 가능성을 타진하고 문화적 맥락에서의 담론 생성에 얼마나 혁신적으로 기여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한국의 비엔날레는 고유의 정체성이 약하다. 그냥 일정한 주기마다 한 번씩 열리는 관 주도형 행사다. 시기는 겹치고 주제 또한 유행에 부합한다. 2018년엔 비엔날레에 '북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 국정 키워드는 북한이었다. 최근엔 너도나도 기후, 재난, 여성, 이주, 소수자, 난민, 팬더믹(pandemic) 등을 꺼내놓고 있다. 그러니 내용도 거기서 거기다.
새로운 스타 및 작가 발굴의 플랫폼으로서 기능은 제대로 할까. 그렇지 않다. 외국 작가들이 참여하지만 국제행사에 부합하기 위한 장치일 뿐 지역작가 안배주의가 만연하다. 비엔날레급이라고 볼 수 없는 작가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은 외국인 감독이 비엔날레를 맡아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비엔날레란 자신만의 카르텔을 더욱 견고히 하는 세(勢)의 무대이자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한 '포트폴리오'인 경우가 많다.
이 밖에도 억지로 녹여내는 지역성과 나열에 그치는 전시 형식, 어설픈 관객 참여 프로그램 등도 문제로 꼽힌다. 비엔날레가 문화기반시설처럼 변질되자 대중은 물론 전문가들의 관심도 저하되고 있다. 실제 많은 이들은 이제 광주비엔날레보다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Seoul)와 같은 대형 상업전시에 주목한다. 미술계 헤게모니마저 아트페어가 주도하는 형국이다.
세계 유수의 국제 미술행사들은 제도화된 미술관 기획전이나 여타 상업전시에서 볼 수 없는 전위적·도발적인 작업들로 채워진다. 실험성을 텃밭으로 한 미술 담화의 생성과 미적이고 사회적인 공론의 성취를 중시한다. '100일간의 저항'으로 불리는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가 대표적이다. 낡고 관습적인 언어에다 편향성 내에서조차 주류가 지배하는 베니스비엔날레(la Biennale di Venezia)가 아니다.
비엔날레는 제안하고 투쟁하는 공간이다.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번역 및 공론화하며 새로운 방향의 제시를 존립의 목적으로 한다. 궁극적 목표는 전시에서 받은 자극이 일상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상호 소통하는 것에 있다. 비엔날레의 건강성은 미술 언어로 우리 사회의 모더니티를 적시하며, 미래 지향적인 문화적 토론을 통해 지구촌 공동체의 삶을 변화시키는 에너지 유무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비엔날레들은 내수용인 도쿄 비엔날레(Tokyo Biennale. 9.23-11.5)보다도 못하다. 세계 5위니 뭐니 하며 자화자찬하지만 내 보기엔 베니스비엔날레 아류인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대개의 비엔날레형 국제행사들은 파괴적·혁명적·문화적 논쟁의 길을 포기하고 있다. 대신 미술이란 장르를 조각, 건축, 미디어, 수묵, 공예, 공공미술, 서예 등으로 세세히 쪼갠 분야별 지역 미술행사로 전락하는 중이다. 이것도 나름 변별점일까. 글쎄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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