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해보면 상대방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언어의 품격'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입술의 30초가 가슴의 30년이 된다'고. 입을 통해 뱉는 말이 불과 30초밖에 안되지만 상대방의 가슴 속에는 오랫 동안 남아 복이 되든, 화가 되든 작용한다는 의미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은행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은행이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갑질하고 있다'며 은행을 다시 한 번 직격했다. 올해 초 '은행은 공공재' 발언으로 은행권의 고통분담을 요구한 이후 두번째다. 종노릇, 갑질 등 표현이 조금 더 격해졌다. 은행을 압박하려는 포석이다. 주요 은행들이 바빠졌다. '상생금융 시즌2' 묘안 짜기에 바쁘다. 대통령의 격한 발언에 이달 들어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는 발빠르게 상생금융 방안을 내놨다. 하나은행은 이자 캐시백, 서민금융 공급확대 등으로 1000억원 규모를 지원할 계획이다. 신한금융도 소상공인·자영업자·청년 등 금융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지원 방안을 내놨다. 신한금융의 지원 규모는 하나금융보다 50억원 많은 1050억원. 그렇지만 금융당국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제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 공감대를 만족하는 방안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 부족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생색내기 수준이 아닌 넓이와 깊이가 더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은행이 다양한 상생금융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바라는 방향과 기대치에 맞추기 위해서다.
결국 은행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자영업자, 취약계층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막을 장치 마련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어려움에 처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재기할 기회를 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인내가 필수다. 은행은 비가 올 때 금융 소비자의 우산 역할을 해야 한다. 넘어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내놔야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그 사람의 품격과 절제력을 엿볼 수 있어서다. 결국 좋은 관계는 서로를 존중하는 말에서 시작된다. 입에서 나온 30초의 말이 상대방을 어렵게 만든다.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은행권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절제 대신 직설법을 썼다. 그 말이 순기능(상생금융 확대)으로 작용하겠지만 부메랑(부실증가 우려)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은행이 이자 장사를 한다고 핀잔을 주지만 시장경제에서 금리는 수요과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각 은행이 처한 여건에 따라 금리가 정해진다. 돈을 조달하는 비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은행이 이익을 많이 내 배당만 늘린다고 '미운털'이 박힌 형국이다. 은행은 국가가 내준 라이선스로 영업을 한다. 나라님이 크게 혼을 내지 않아도 말을 잘 들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은행을 향해 격하게 반응하기 이전에 금융당국이 먼저 나섰으면 어땠을까. '가져오면 좋은 것을 고를께'라며 안일했던 것은 아닐까. 은행에 상생금융안을 내놓으라고 하기 전에 금융당국이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며 컨설팅을 할 수도 있었다. 좀 더 넉넉한 상생금융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도 있다.
상대방을 꼬집을 때도 언어의 품격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특정 업종을 향한 격한 발언이 아쉬운 이유다. 아주 짧은 말이었지만 은행은 물론 은행업과 관련있는 모두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에둘러 표현할 수도 있었다. 그것이 정치이고, 통치다. 나눗셈이나 뺄셈보다 덧셈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리더다. /금융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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