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익 지음/현암사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읽다가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 책을 내 인생에서 좀만 더 일찍 만났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돼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책의 저자는 이름과 정반대의 삶을 살다 간 전우익옹이다. 그는 해방 후 민청에서 청년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6년 남짓 징역을 살고 나온 전우익은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일을 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았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는 저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으로, 자연에서 터득한 삶의 지혜가 담겼다. 전우익옹은 부들로 자리를 매다가 세상에 쓸모없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들을 고를 땐 처음에는 많이 버렸어요. 그러나 이젠 거의 다 씁니다. 제일 나은 것은 앞에 대고 다음 것으로 뒤에 받치고 짧고 못생긴 건 속에 넣지요. 부족한 것을 감싸 안는 아량 같기도 한데, '짧다', '길다' 하는 건 사람이 하는 말이고 길고 짧은 것이 알맞게 모여 식물은 이뤄져 있지요"
전우익옹은 서로 조금이라도 더 갖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이는 인간들에게 자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자리 매는 일보다 몇천만 배 더 큰 일 하자면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어울려야 할 텐데, 요즘은 일치보다는 차이를 너무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키가 큰 나무 작은 나무, 잎이 넓은 나무 뾰족한 나무, 심지어 이끼, 버섯까지도 모여 앞산 숲은 이뤄지고, 손금은 세계에 똑같은 사람 하나 없어도 모두 비슷한 장갑 끼고 이 겨울을 나는 데 말입니다"
그가 계절별 자연의 변화에서 구해낸 인간사에 대한 통찰은 놀랍기만 하다. 이른 봄 얻어 심은 수유 씨는 몇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수유는 늦여름에야 나기 시작했고, 그는 씨라는 것도 제각기 나름의 성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의 생김새와 성격이 전부 다른 것처럼, 식물도 그와 같아 농사짓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가을엔 누렇게 빛이 바래 머지않아 떨어질 잎들을 잔뜩 달고 있는 상수리나무와 자작나무들을 보며 한탄한다. 춥고 먼 길을 가자니까 될 수 있는 대로 간편한 몸가짐을 해야겠어서 잎을 다 떨궈버리는 지혜가 나무에겐 있는데, 왜 사람에게는 없는지를.
그는 올겨울도 추울 거라고 말한다. 그해 여름 그해 겨울을 살기에 언제나 지금이 가장 춥고 덥다는 것이다. 덥지 않은 여름이 없고, 춥지 않은 겨울이 없듯 역사도 수월할 때가 없었을 거라며. 그럼에도 온화한 가을을 몰아내고 찬바람을 몰고 온 겨울이 달갑지 않아 가자미 눈으로 흘겨보는 이들에게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한응대지발춘화(寒凝大地發春華)' 꽁꽁 얼어붙은 겨울 추위가 봄꽃을 한결 아름답게 피우리라는 노신의 시 구절입니다. 겨울과 봄이 남남이 아니라 맞물려 있다는 뜻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겨울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167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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