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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왜 '졌잘싸'인가

차상근

[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왜 '졌잘싸'인가

 

'졌잘싸'란 표현이 한 이틀간 인터넷 상에서 부쩍 자주 보인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뜻은 대개 짐작할 것이다. 스포츠 경기나 인터넷 게임 등에서 결과는 패배했지만 그 과정을 보면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며 명경기를 보여줬거나 아깝게 석패한 경우에 이 말로 패자나 응원자 자신을 위로하곤 한다.

 

이 말의 발원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흔히 쓰이기로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정도 부터인 것으로 기억한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추억을 안고 출전한 2006년 대회에 국민들의 기대는 컸고 원정 첫승까지 거뒀다. 조별예선 1승1무상태에서 원정 월드컵 첫 16강이란 대업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스위스와 맞붙었다. 압도적 공격을 가했지만 석연찮은 판정 등에 분루를 삼켰다. 지상파방송에서는 '졌지만 잘 싸웠다'란 말로 국민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애초에는 위로의 말로 사용됐지만 요즘은 결과를 비꼬는 투에 더많이 사용되는 느낌이다. 경기 전에 질 걸 알았고 경기내용 자체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 뜻에서 '엌 졌잘싸ㅋㅋㅋ'라는 문자를 SNS나 댓글 등으로 날리곤 한다. 심한 경우 '졌으니 짐 잘 싸라'라는 비아냥의 약어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두 얼굴의 '졌잘싸'가 28일에는 여의도 정가발로, 29일에는 프랑스 파리발로 세간에 등장했다.

 

전자는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 행사장에서 "민주당의 최고 책임자가 대통령 선거에서 졌지만 잘 싸웠다고 먼저 규정지은 것에 경악했다"며 현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는데 사용했다. 1년전 대선 상황을 놓고 벌이는 정당내 흔한 말싸움이다. 후자는 부산의 2030년 엑스포 유치전이 실패한 뒤 유치위원회 관계자가 변명하듯이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의미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본래 의미가 주로 석패, 분패한 경우에 쓰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날 투표결과는 밤늦게 결과를 기다리던 국민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그동안 언론매체에서는 박빙 열세를 계속 보도했다. 투표결과가 국제박람회기구 행사장 전광판에 찍히는 순간까지 현지 중계방송은 2차 결선투표행과 대역전극을 언급하며 분위기를 달궜다.

 

그러나 119대 29대 17. 한국은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총 165개 투표국을 놓고 무려 90표를 뒤졌다. 사실상 포기수준으로 여겨졌던 이탈리아 로마보다 겨우 12표 많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29개 친한파(득표국) 중에는 동남아와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권은 눈을 씻고봐도 드물다. 남미도 비슷하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K-파워가 전세계를 헤집고 있는 요 몇년새 볼 수 없었던 국제경쟁 대참패였다.

 

백번 양보해 외교력의 한계는 1위 사우디의 오일머니 살포때문이었다고 접어두더라도 정보력 부재는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한다.외교부 당국자는 투표직전까지 '박빙 승부'를 거론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1차 투표에서 사우디의 3분의 2 득표를 저지하고 결선에서 승리한다는 작전계획을 되새겼다. 정부나 민관합동유치팀의 상황파악은 어떤 근거로 나온 것인 지 모두가 궁금해 한다.

 

전장에 나가면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중요하고 제일 먼저 판세를 읽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능력이든 형국이든 불리하면 그에 맞춰 필승전략을 가져가야 비록 지더라도 '졌잘싸'를 꿈꿔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너무 동떨어졌다. 이런 와중에 집권여당의 대표는 이전 문재인 정부가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어 불리했다며 책임전가론을 또 폈다. 유치위 고위 관계자는 '오일머니' 공세와 저개발 국가들의 '금전적 투표론'을 변명처럼 둘러댔다. 유치전 현실이 이들의 항변 논리를 정확히 뒷받침했다 하더라도 깜깜이 정보력은 분명 지적받을 만 하다. 아니면 유치팀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판세를 알면서도 물러서는 모습을 못 내비친 속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오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대국민 메시지를 내며 "민관에서 접촉하면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말했다. 1년 넘게 100여개국 정상들을 만났고 투표 사흘전까지 파리 현지에서 득표활동을 한 윤대통령이 홀로 고군분투(孤軍奮鬪)한 것은 아닌지 따져볼 상황이다. 참패의 판세를 몰랐다면 분명 정부 상층부의 소통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졌잘싸'의 뜻이 '졌으니 짐이나 잘 싸라'는 비아냥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도 있다. 넘쳐나는 '졌잘싸'의 의미를 곱씹어 보고 정부의 신뢰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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