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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한의 시시일각] 19호실로부터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하지만 강화대교와 초지대교로 연결돼 있어 육지나 다름없다. 수도권인데다 역사와 문화, 자연경관 등이 빼어나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강화 5일장'(강화풍물시장에서 매달 2, 7로 끝나는 날 열린다)이 서면 김포 인근부터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주요 관광지로는 천년고찰인 백련사와 전등사, 보문사, 고려궁지, 고인돌 등이 꼽힌다. 분단의 현실을 최전방에서 살펴볼 수 있는 '강화평화전망대'와 더불어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 나라에 변란이 있을 때마다 수도인 한양을 지키던 요새 '갑곶돈대' 등도 대표적인 볼거리다. 카페 '조양방직'과 루지 체험장 또한 인기가 많다.

 

색깔 있는 문화공간들도 여럿 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사립 미술전문도서관인 '강화미술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로 사랑받아온 '해든뮤지움',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인 'DRFA365예술극장', 시골 주택의 원형을 그대로 살린 독립서점 '딸기책방' 등이다. 이 중 독서·교육·전시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를 이끌고 있는 '강화미술도서관'은 미술애호가들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보석 같은 곳이다.

 

한해 수백만명 이상이 걸음하는 만큼 강화도엔 숙박시설이 풍부하다. 그중에서도 국화리 저수지 근처에 위치한 '잠시섬 빌리지'는 특별하다. 강화도 토박이 청년과 외지 청년들이 합심해 설립한 협동조합 '청풍'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인 이곳은 적막함 속에서 홀로 머물며 사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도가 높다.

 

그런 그곳에서 최근(12.5~18) 숙박형 전시 '19호실로부터'가 진행됐다. 예술가 강영훈이 기획하고 4명의 작가들이 함께 한 다원예술프로젝트로, 사실상 오감 체험형 전시에 가깝다. 제목은 이란 태생의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1963)에서 따왔다.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19호실로부터'는 지난해 제주에 이어 선보인 두 번째 기획이다. '여성', '나다움', '안전'이 키워드다. 기획자는 여러 사연을 접수받은 후 14명의 손님을 초대했다. 사전 예약을 거친 참여자들은 익명의 방문객이 돼 빌리지에 마련된 19호실에 각각 머물렀고, 자기만의 속도를 지킨 채 그동안 잊고 지낸 '나다움'을 찾아 나섰다. 엄마, 아내 등의 이름은 잠시 내려놨다.

 

방문객들은 가장 안전한 감각의 장소인 19호실에서 미등록 이주여성인 '빙'(가명)을 만났다. 19호실에 마련된 예술작품들과 편지를 통해서다. 예술가들은 '빙'의 삶을 저마다의 관점과 매체로 재해석한 작업을 빌리지에 전시했다. '빙'이 겪어 온 인생 여정을 옮긴 편지를 비치해 방문객들과 공유했다. 이는 각기 다른 '나'가 공존할 때 '나'와의 반경을 확인하기 위함이자, 사회적·경제적·법적인 이유로 동시대 공동체 내에서 차별받는 약자들의 '안전한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한 기획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편지를 읽은 방문객들도 '내가 아닌 나'로서의 삶을 포함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빙'에게 들려줬다. 역시 편지 형식을 빌렸다. 안 해도 그만이었지만 '나'와 마주하는 길목에서 마주한 그들은 주저없이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편지에 새겼다. 그렇게 편지는 '나와 다르지 않은 나'를 발견케 한 매개가 됐고, 따로 또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한 가교로 기능했다.

 

특히 19호실로 들어선 방문객들은 '빙'과의 관계 속에서 실존은 어디에 있으며,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를 서신과 작품들을 통해 곱씹었다. 19호실로부터 벗어날 땐 과연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가 없는 곳,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안전한 곳'은 어디인지 자문하도록 했다. 19호실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함께.■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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