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네덜란드의 경제는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세계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고, 암스테르담에는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어 금융의 허브가 되었다. 큰돈을 번 상인들은 사치와 허영에 빠져 들었다. 이 때 부자들의 눈에 띈 것이 튤립이었다. 원래 튤립은 오스만제국이 원산지인데, 16세기 말, 오스만 제국에 주재하던 오스트리아의 한 외교관이 튤립을 가져오면서 유럽에 소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튤립은 예쁘고, 당시에는 희귀한 꽃이었다. 그리고 한 개의 모근(뿌리)에서 일년에 2-3개의 구근을 키울 수밖에 없어서 대량 생산도 어려웠다. 여성들은 튤립으로 치장하고 싶어 했고, 부자들은 자신의 정원을 튤립으로 장식하려 했다. 이렇게 되자 시장에서 튤립 값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모습이다. 그러나 투기세력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튤립가격은 하루에도 몇 배씩 올랐고, 투기는 점점 더 심해졌다. 1637년 2월 5일 튤립값은 최고점을 찍었는데, 그날 가격은 현재 시세로 무려 3000만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뒤 악몽이 시작되었다. 암스테르담의 경매장에 구매자가 단 한명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그제야 무언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튤립을 앞다투어 팔려고 했다. 튤립 가격은 95%가 하락했고, 수많은 어음이 부도 처리되었다. 투자자들은 파산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을 '튤립버블'이라고 부른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더 큰 바보이론(greater fool theory)'로 이런 현상을 설명했다. 내가 아무리 비싼 가격에 튤립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나 보다 더 비싼 가격에 이 튤립을 구매해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즉 나보다 더 큰 바보가 있다는 믿음이 버블을 부추긴다는 설명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닷컴 버블이 그랬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그랬다.
최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이 사태는 과도한 PF대출에서 기인한 것이다. 문제는 태영건설 뿐만 아니라, 많은 건설사들이 PF대출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은 정신없이 올랐다. 건설사들도 땅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건설사들은 엄청난 PF대출을 끌어와 사업을 확장했다. 그 이면에는 '아무리 비싸게 땅을 사더라도, 건물만 지으면 더 비싼 가격으로 분양받을 바보들이 많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건설사의 선전을 믿고 분양받은 수많은 지식산업센터들은 몇 년째 공실로 비어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상가를 팔지도 못하는 수분양자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바보가 되어버렸다.
인간에게 탐욕이 있는 한, 이런 바보찾기 게임을 계속 반복될 것이다. 그러나 튤립버블 사건을 보면 바보찾기 게임의 종말이 어떠한지는 명확하다. 과도한 욕심이 불러온 이 게임은 기업의 몰락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 집 마련, 편안한 노후를 꿈꾸던 수많은 서민들의 피눈물로 결말지어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게임인 것이다. 이제는 건설사들이 이 멍청한 바보찾기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사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김준형 / 칼럼니스트(우리마음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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