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시절에 좋아했던 시가 있다.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이다. 노래이기도 해서 혼자 흥얼거리기도 했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선 목청껏 불러보기도 했다. 허름한 목로주점의 다락방에서 젊은 울분을 그렇게 토해보곤 했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우리가 저와 같아서/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이렇게 시는 처음에 물길을 내고, 인생사로 흘러들어간다. 물살이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잔잔하지만도 않은 것이, 우리가 마치 강물처럼 시간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저 바라만 보지 않고 우리는 기꺼이 강변으로 나간다. 삽은 노동이고, 고된 생활을 상징하지만 우리는 삽을 씻듯이 인생을 정화하며 내일을 준비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강물을 이렇게 말했다. "너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늘 새로운 강물이 너에게 흘러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강물은 변화하는 환경이다. 흐르는 것은 똑같지만 우리가 강물처럼 흘러갈 것인지, 새로운 강물을 맞아 발을 담글 것인지는 한참 다를 것이다.
한쪽이 순종이라면 다른 한쪽은 도전이다. 한편이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면 다른 한편은 새로운 물길을 내어 길을 만든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목적의 지배를 받지 않고 단지 우연과 필연으로 변할 따름이다."
논리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이다. 이 말이 담겨 있는 '러셀 서양철학사'에서 러셀은 또한 "그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을 실제보다 더 쉽게 생각했지만, 이러한 낙관주의가 없었던들 그들은 감히 시작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도 했다.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자면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폭우가 쏟아져 불어나기도 하고,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흐르는 것엔 우연적인 사건이 따르고, 이러한 우연이 모여 필연을 만들 것이다.
이렇게 보면 흐르는 것은 물뿐이 아니라 인생의 길이다. 우리가 어떻게 흐름에 맞게 물길을 만들 것인가가 인생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스무살 시절에 서른살을 더하여 쉰살 시절을 겪다 보니 이렇게 말들이 서로 엮여 읽힌다. 흐르는 것이 물뿐이 아니라 인생이라 할 때 필자가 좋아하는 린드만 선생의 말로 이를 정리하고 싶다.
"인생은 성장(지속적 변화)이며, 환경은 한 순간도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지성은 이러한 새로운 상황이 요구하는 도전에 늘 직면한다."
덧붙이자면 지성은 학습하는 능력이자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며, 변화하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용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능력의 범위와 한계를 발견할 때 자유로워진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실현가능하며 감당할 만한 이상을 세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항상 성장을 거듭할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게 평생학습의 첫 단계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강변에 나가 삽을 씻고 싶다. /임경수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교수/성인학습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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