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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철의 쉬운 경제] 왕에게는 충성(?), 나라에는 배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저자 신세철.

[신세철의 쉬운 경제] 왕에게는 충성(?), 나라에는 배신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 이후 프랑스 왕조는 베르사유 궁전 같은 건축으로 낭비를 일삼아 루이 16세에 이르러서는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했다. 경복궁을 세우다 재정을 파탄 내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근세 조선도 그렇듯이 재정적자는 기존 체제 를 무너트린다. 백성들의 굶주림과 동떨어지게 극에 달한 루이 왕조의 사치를 이렇게 묘사했다. "영화의 껍질을 한 겹만 벗겨내면 거기에는 빈곤과 궁핍만이 있었다. 한 번도 씻은 적이 없어 먼지와 때로 범벅이 된 몸에 걸친 가발과 레이스 장식은 아름다운 의상의 거짓 세계일 뿐이다. 굶주린 민중이 소동을 벌이자, 얼빠진 벼슬아치는 심지어 "들에는 풀이 있다. 가난뱅이는 풀을 먹어라 외쳤다"(J. Nehru '세계사편력'에서)

 

1789년 루이 16세는 성직자, 귀족, 부르주아로 구성된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세금증액을 논의하였으나 합의를 못 이뤘다. 시민계급 대표들은 후에 국민의회를 결성하고 "어떠한 세금도 국민의회 동의 없이는 거둘 수 없다"고 선언하자 왕은 강제로 의회를 해산하려다 충돌하면서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다. 루이 16세는 외국으로 탈주하려다 오스트리아 국경 가까이서 붙들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지도자가 "짐이 국가"라며 큰소리치다가 나중에는 저 혼자만 살려고 줄행랑치며 비루먹은 꼴을 보이는 장면은 우리 근세사에서도 등장한다.

 

당시 프랑스군 사령관으로 국경 수비를 맡고 있던 아무르 드 부예(Amour de Bouille)는 자신을 중용한 루이 16세를 구출하기 위하여 힘을 기울였다. 왕의 탈출 시도가 없었다고 주장하거나, 루이 왕이 갇힌 감옥을 깨트릴 계획까지 세웠던 까닭은 왕에게 충성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왕조가 무너지지 않는다고 오판했기 때문일까? 프랑스 국가 라마르세즈에는 "피에 굶주린 독재자들은 '부예'의 공범자들이다"라고 묘사하며 나라를 무너트린 루이 16세보다 맹종자 드 부예에게 더 큰 죄를 물었다.

 

만약 프랑스혁명이 무산되었다면 백성들을 저버리고 루이에게 맹종했던 드 부예는 충신이 되어 오래 영화를 누렸을지 모르지만, 왕조가 무너지면서 '용서받지 못할 배신자'가 되었다. 우매한 왕에게 순치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급변하는 정세에서 왕권과 시민권 어느 길이 옳은지 분간할 지성이 없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권력자에게 맹종하며 국가에는 배신하다가, 질서가 바뀔 조짐이 보이는 순간 누구에게 충성할지 몰라, 가짜 의리와 배신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는 장면은 인간사회 어디서나 엿볼 수 있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부예는 명예롭게 이기기는커녕 더럽게 진 셈이다. 인생살이 조금만 멀리 보면 지더라도 멋지게 지겠다는 용기를 가지려면 더럽게라도 이기려는 탐욕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쉬운 일이 정녕 아니다. 마음속으로 멸사봉공, 선공후사, 선민후사를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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