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라는 이유만으로도 특별하게 예우한다는 한 국외 이주 작가의 오래전 발언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우리네 삶의 질을 높이는 존재로 (예술가들을) 대우하기에 긍지와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부럽다. 한국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한량(閑良)에 준한다. 사회적 신분은 그저 그렇고 지위 역시 불안정하다. 아직도 누군가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자발적 무직자' 정도로 본다. 가난하게 살면서 쓸모없는 일을 하는 부류로 단정하기도 한다.
가난한 건 맞다. 남들의 두어 달 월급이 연간 수입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 실태조사'(2021년, 14개 예술 분야 5000명 대상) 결과에 따르면 월 평균수입이 100만원 이하라고 응답한 예술인이 86.6%에 달했다. 연간 평균 수입이라야 755만원에 불과했다.
가난한 건 분명하나 예술가들이 넋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스타벅스'엔 감히 갈 수 없으나(국민의힘 한동훈·장예찬과 같은 천박한 계급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연소득 4500만원 이하의 서민이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건 사치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무던히 애쓴다. 겸업이 보편적일 만큼 두세 개 이상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작품을 팔기 위해 고심한다. 예술을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비즈니스를 공부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며 머릴 싸맬 때도 있다.
녹록하지 않다. 누구나 제프 쿤스(Jeff Koons)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돈 좀 벌겠다고 미술시장을 기웃거리지만, 괴롭다. 미적 신념은 무너지고 심적 체제의 붕괴를 느낀다. 부유층의 취미와 기호에 부응하는 형식주의에 빠진 채 예술의 허위성을 찬양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환멸까지 인다.
당장 해결해야 할 민생고 문제와 무관하지 않은 현실은 쓰다. "팔기 위해 만들지 말고 만든 것을 팔아야 한다."는 말은 야속하다. 예술의 자율성을 제한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서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나'라는 정체성마저 혼란스럽게 만든다.
모든 게 어렵다. 선택은 쉽지 않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병행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예술을 한다. 베짱이 같은 존재라고 폄하해도 그림을 그리고 작업이란 것을 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따라, 알 수 없는 이유로,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일부는 예술이 다른 분야처럼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유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술작품이 인간의 경험과 감정,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예술가의 인격과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는 창조적 활동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과 쓸모없는 일을 구분할 줄 안다.
예술가는 역사와 사회적 변화를 기록하는 존재다. 기존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문화와 사회의 진화에 기여한다. 그들의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 자체로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인 문제에 대한 논평이자, 인류사에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을 촉구하는, 대화와 변화의 촉매제다.
이처럼 예술가는 문화적, 정서적, 지적 발전에 필수적인 통찰력을 제공하고 인간 경험의 풍부함과 다양성에 도움을 준다. 작품을 통해 구성원 간 공감과 연결을 촉진하면서, 경제의 중요한 기여자로서 위치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린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꽤나 중요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자긍심과 보람을 갖도록 독려해야 옳다.■ 홍경한(미술평론가)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