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Jean Paul Sartre)에게 예술은 자유의 표현이다. 벨기에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예술을 사회적인 규칙과 문화적인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예술의 개념은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을 포괄하기에 일반적으로 합의된 정의는 없다. 수 세기 동안 예술가와 사상가들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논의해왔지만, 예술 자체가 근거를 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명쾌한 답 또한 내놓지 못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만큼 '예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역시 쉽게 규정하기 어렵다.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삶을 더욱 풍요롭고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으나 정답은 아니다. 각종 재난의 시대에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을 되묻고 디지털 시각 체제와 현실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는 것 자체를 예술의 역할로 꼽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같은 이들도 있다.
이 밖에도 예술의 역할에 관한 판단은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욕망의 표출과 행복의 실현을, 어떤 이들은 인간 존재 의미의 탐구 및 전달을 예술의 역할로 본다. 혹자는 타인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제공하거나 위안을 심어주면 예술 본연의 소임을 다한 것이라 여긴다.
모두 맞다. 그것이 실체보다 외관을 강조함으로써 예술의 피상성과 소비주의 문화에 기여할지라도, 또는 기술을 예술의 전부로 착각하는 결과물이더라도 각각의 역할은 있다. 심지어 장식적이거나 풍수적인 작품들(미술 시장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요소다)조차 어떤 이에겐 예술로써 제구실을 다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사람마다 예술관이 다르고, 예술이 이해되는 방식에 관한 생각 또한 동일하지 않다. 미와 예술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게 답답하지만 옳고 그름을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예술의 정의와 역할이 무엇이든 굳이 예술가일 이유가 없는 것과 반드시 예술가이기에 가능한 것의 분간은 필요하다. 예술가와 예술가적인 것의 간극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는 사회 전반의 문제와 대면하고 현실의 삶에 참여하는 것을 예술로 여겼다. 요셉보이스(Joseph Beuys) 같은 인물은 예술이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이들에게 예술(가)과 그 역할이란 사회 혁신의 동력이 돼야 한다는 공통된 믿음이 있다.
미술평론가 김영호의 말처럼 '예술은 당대의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따라서 예술은 사회적 진보와 문화적 다양성 촉진에 기여해야 하고, 부조리한 구조와 제도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며, 순응적인 모든 문법에 저항하는 실천성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술의 역할과 가치가 빈곤한 시대다. 편협의 극단에 이른 현재다. 예술가들은 보편성을 상실한 개인의 서사와 공동체적 이슈를 분간하지 못하고, 예술제도는 방향의 정립보단 온갖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바쁘다. 만약 그것이 바른길이라면 우린 예술(가)에 대해 잘못 배웠다. 그게 영원한 진실이라면 예술의 본래 기능이란 애초 존재 불가능했거나 위선이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2월 같은 지면에서 나는 "예술가는 역사와 사회적 변화를 기록하는 존재다."라고 썼다. 예술작품에 대해선 그 자체로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인 문제에 대한 논평이자, 인류사에 중요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을 촉구하는, 대화와 변화의 촉매제라 정의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 모든 건 결국 핵심 주체인 예술가들에 의해 선도돼야 한다는 것도, 정치를 비롯해 인간 삶을 억압하는 터전을 불태워 새싹을 돋게 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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