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라는 고급 콘텐츠를 거래하는 거대한 상업 플랫폼인 아트페어. 한국의 아트페어는 숫자 면에서 압도적이다. 약 15년 전만 해도 30여개에 불과하던 것이 2021년엔 80여개로 치솟았고 현재는 100여개를 웃돈다. 고만고만한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가 20여개가량 난립하는 것도 그렇지만 한해 이렇게 많은 아트페어가 열리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
아트페어가 넘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 관심이 높아서일까, 아니면 경제성장으로 인한 대중들의 미술품 구매력 상승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아트페어의 과잉은 어느 하나를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각각의 요소들은 맞물려 있을뿐더러, 미술 작품 컬렉션을 투자의 대안적 개념으로 보는 시대 흐름 등도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가장 정답에 가까운 건 '작품의 팔릴 가능성'이다. 고객 유인 효과에서도 그렇고 작품 판매의 여지 측면에서 역시 군집 형태가 개인전 혹은 개별 화랑에서의 전시보다 낫다는 것이다. 지역에서 열리는 소규모 아트페어와 개인 및 공공기관, 기업 주도형 페어들도 동일한 맥락에서 생겨난 것들이다.
아트페어의 수만큼 생산자인 작가들의 참여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아트페어가 작가들에게 반드시 경제적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돈 내고 참여하는 아트페어라면 판매 부진 시 발생하는 손해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귀엽고 앙증맞은 동물이나 예쁜 꽃 그림, 기타 장식용 그림과 부적 같은 작업이라면 모를까, 판매 수익은 고사하고 작품 운송료조차 건지지 못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 명성, 독창성, 적절한 가격대, 기술적 완성도, 취향, 트렌드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탓이다.
아트페어는 경력 면에서도 그리 유의미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아트페어에 출품하는 빈도가 잦을수록 그 작가에겐 '페어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된다. 페어 작가란 '상업 작가'와 동의어다. 그런데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하는 예술가 지원 제도의 다수는 작가들이 상업적인 활동과 거리를 두더라도 창작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둔다. '화폐'로 치환해야 할 수단으로서의 미술과 '사회적 의사표시'로서의 미술을 구분한다.
작가 경력에 있어 무게감이 약한 또 하나는 공모전이다. 등용문 역할을 맡고 있지만 가치 있게 쳐주지 않는다. 솔직히 어떤 공모전에서 어떤 상을 받든 대단하게 보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일부일지라도 심각한 비리의 역사를 갖고 있어 인식이 좋지 않은데다 생활 예술인들의 무대로 보는 게 현실이다. 협·단체들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시각도 공모전 경력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이유다.
물론 공모전은 전시 기회가 적은 신진 작가들에겐 그나마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장이 되곤 한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기회인 셈이다. 그렇더라도 최선의 선택인지는 의문이다. 대안 공간이나 신생 공간에서의 전시, 뜻을 같이하는 작가들끼리 뭉쳐 치르는 임시 공간에서의 실험적인 전시 경력보다 결코 낫지 않다.
작가 경력에 있어 유의해야 할 예는 또 있다. 바로 삼류 상업 갤러리와 어울리면 3류 작가가 된다는 것이다. 그만큼 어떤 화랑과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느냐는 경력에 매우 중요하다. 이 밖에도 별 볼 일 없는 10번의 전시보다 공신력 있는 공간에서 여는 한 번의 개인전이 경력에 훨씬 유리하며, 기획전일지라도 수준 낮은 작업의 작가들이 즐비하다면 가급적 참여하지 않는 게 좋다. 궁극적으론 경력에 반영된다.
아트페어 홍수다. 이런저런 전시들이 숱하게 개최된다. 하지만 대개는 의미를 갖지 못하고, 참여가 곧 가치 있는 경력으로 치환되는 것도 아니다. 창작 활동의 연속성과 예술가로서의 성취를 원한다면 작품성만큼 무언가를 제대로 분별하는 시각 또한 중요하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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