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한 사상 초유의 집단휴진이 결국 시작됐다. 서울대 의대 산하 4개 병원(서울대학교병원·분당서울대학교병원·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강남센터)은 17일부터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하고 외래 진료 및 수술을 중단했다.
18일에는 대한의사협회 주도로 동네 의원들과 주요 대학병원이 일제히 하루 휴진에 나선다.
서울대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휴진은 미래 세대가 안전하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의사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할 책무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절실한 외침"이라고 밝혔다.
환자들의 반발과 정부의 끝없는 설득, 경고에도 의사들은 반발 수위를 되레 높이고 있다. 그들은 물러설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밥 그릇 싸움이 아닌 진짜 환자를 위한 의료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정책이 오히려 한국 의료 시스템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들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들어봤다.
◆"계획없는 증원, 의료 무너뜨릴 것"
서울대병원 소속 교수들은 17일 '휴진 결의 집회'를 열고 정부를 향해 전공의 행정처분을 완전 취소하고 상설 의정협의체를 만들 것을 요구했다. 2025년도 의대정원은 교육 가능한 수준으로 재조정하고, 2026년도 의대정원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한 논의를 요청했다.
정부의 기본 정책 방향은 의대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2025년 입시부터 5058명으로 늘려 의사 수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필수진료과와 비수도권 지역에 증원 인력을 집중 배정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의료 현장에 있는 의사들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정부가 결정한 1년 후 2000명 의대 증원은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 수를 늘려 받으려면 시설 확대와 교수 증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 근거다.
또한 의사 수만 늘린다고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로 의사들이 옮겨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익명을 요구한 흉부외과 교수 A씨는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해서 필수의료, 지역의료에 인원이 적다고 볼 게 아니라, 기피과에서 왜 의사를 고용할 수 없는지, 의사들이 왜 기피과를 자꾸 떠나는지 근원적인 시스템 문제를 들여다 봐야 한다"며 "의료수가에 대한 문제, 의료 사고에 대한 문제와 같이 지역의료와 필수의료로 갈 수 있는 정책이 선행된 후에 증원을 고려하는 것이 맞는 수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정책 기반 없이 의사수만 무작정 늘리면 특정과에 대한 경쟁은 더 심해지고 개원 병원 숫자만 늘어나 불균형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며 "의료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와 치밀한 계획을 먼저 세운 후 증원 결정이 이루어졌어야는데 정부는 그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번 의정 갈등으로 필수 의료에 대한 기피현상은 오히려 심화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최창민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장은 "필수의료는 돈을 더 준다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의사가 됐을 때 사회에 대한 영향력,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선택을 한다"며 "하지만 정부가 이번 갈등 속에서 마지막 남은 사명감 마저 다 없애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레임을 걷고 현실을 직시해달라"
의사들은 이번 의정 갈등으로 인한 상처를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지내온 대다수의 의사들은 '밥 그릇을 지키려고 환자를 팽개친다'는 프레임에 갇힌 순간 큰 절망감과 상실감을 느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집단 휴진 결정이 아니더라도 개별 사직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병원 정형외과 교수 B씨는 "우리는 환자를 살리는 의사고, 제자를 키워내는 선생인데 이번 일로 노력과 시간을 쏟아왔던 대상이 모두 사라졌다"며 "업무가 과중하고 피로가 쌓이는 것은 기존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가르칠 학생이 없고 수술할 환자도 없이 지쳐가는 이 상황을 더 못견디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전공의가 돌아올 것이란 희망이 사라지면 회복이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내놨다.
그는 "전공의가 없으면 수술 자체도 문제지만, 수술 후 관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수술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의사들은 사명감과 책임감이 누구보다 큰 사람들이다. 기득권, 밥 그릇을 챙기기 전에 의사로서 지내온 삶에 회의감을 못견디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정적인 프레임과 비난을 거두고, 이번 의료개혁이 가져올 미래를 명확히 봐야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최창민 비대위원장은 "교수들은 의료 시스템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의사 밥그릇 싸움으로 치부되며 할 수 있는 것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정부가 (환자와 의료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데 의료개혁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를 먼저 살펴보고 인식 전환을 빨리 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Copyright ⓒ Metro. All rights reserved. (주)메트로미디어의 모든 기사 또는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주식회사 메트로미디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17길 18 ㅣ Tel : 02. 721. 9800 / Fax : 02. 730. 2882
문의메일 : webmaster@metroseoul.co.kr ㅣ 대표이사 · 발행인 · 편집인 : 이장규 ㅣ 신문사업 등록번호 : 서울, 가00206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2546 ㅣ 등록일 : 2013년 3월 20일 ㅣ 제호 : 메트로신문
사업자등록번호 : 242-88-00131 ISSN : 2635-9219 ㅣ 청소년 보호책임자 및 고충처리인 : 안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