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외곽에 거주하는 40대 한국인 A씨는 한인마트에 갈 때마다 주류 진열대부터 찾는다. 막걸리 제품이 입고됐는지 궁금해서다. 물론 플라스틱병에 담긴 생막걸리는 없다. 효모를 다 죽인 멸균 막걸리인데, 이마저도 매장에 새로 들여놓으면 수일 내에 동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현지인들 구매가 부쩍 늘었다고 A씨는 전했다.
각종 매체를 타고 해외에서 탁주의 인기는 급상승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멸균 막걸리 한 캔에 우리 돈 2만~3만 원은 내야 사 마실 수 있다. 수출된 소주 가격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어느덧 막걸리는 K-푸드 수출에서 빠질 수 없는 효자 품목이 됐다. 정부도, 산하기관도 해외박람회 등을 통해 탁주업계를 적극 밀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 여행 와 처음 맛본 생막걸리에 반한 외국인이 본국에 돌아가서 다시 찾을 땐 없다. 멸균 제품 소비기한은 1년 정도인 반면 생막걸리는 보통 열흘 안팎에, 길어야 30일이다. 후자는 또 냉장 유통이 전제조건이다.
생막걸리 등의 수출길을 트는 작업을 정부가 업계와 함께 논의 중이라는 소식은 접하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는 특정 지역에서 열린 K-푸드 박람회 수출상담 성과를 자주 언급한다. 특히, '폭발적 인기'라는 문구를 매우 보편적으로 쓰고 있다.
인기가 사실이긴 하지만 한 걸음 더 내딛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맛은 이미 해외에서 검증됐다"며 "국내 우수제품의 포장 기술력 등을 소개하는 자료가 나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열풍은 K-드라마와 K-팝에서 비롯된 측면이 상당하다는 점을 정부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우리 식품이 뻗어나가는 시점에 과한 자화자찬이 오히려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자찬에 앞서 취약한 분야 뒷받침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정부가 최근 푸드테크 등에 귀기울이고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은 매우 고무적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푸드테크란 식품업과 관련 산업에 4차 산업기술을 도입해 향상된 부가가치 창출을 도모하는 기술 분야을 뜻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도 이 같은 움직임에 합류했다. 김춘진 aT 사장은 지난 19일 서울 강남구 소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된 '월드푸드테크 컨퍼런스 2024'에 참석해 푸드테크 산업 발전방안을 논의했다.
김 사장은 개막 축사에서 "기후위기와 초고령화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우리 농업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대안인 푸드테크 산업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존의 식품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해 국내 및 해외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산업계 및 관련 학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어쨌든 현재까지 우리 농산물·식품과 관련해 대외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미국 현지에서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를 통한 K-푸드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이달 상순 농림축산식품부·aT는 미 동부 애틀랜틱시티에서 개최된 샵라이트 LPGA 클래식 골프코스를 방문해 제품을 홍보했다. 특히 선수들이 경기 전에 펼치는 드라이빙 레인지 연습장 곳곳에 K-푸드 브랜드 로고를 배치했다. 현장은 물론 중계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골프시청자들에게 노출을 극대화함으로써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아울러 각국 갤러리가 모여드는 야외장소에서는 인기 수출 품목 홍보부스를 테마별로 마련해 과자, 음료, 라면, 김치, 장류 등을 알렸다.
권오엽 aT 수출식품이사는 "미국은 물론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인기 스포츠 연계 마케팅은 K-푸드를 더욱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지난달 런던에서 열린 수출상담회에서는 맛두유와 대체육 등 비건 제품이 주목받았다. aT는 현지바이어 아시타 씨의 소감을 전했다. 그는 "맛두유 신제품은 기존 두유에 고구마나 밤 맛을 첨가해 특색있다"며 "직관적인 제품 포장 디자인 덕분에 영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시 우리 측은 런던 현지에서 총 79건의 상담을 통해 217만 달러 상당의 거래계약 성과를 냈다.
역시 지난달 호주에서는 15만 달러 규모의 막걸리 수출 현장계약이 체결됐다. 또 버섯·김치 부문 100만 달러대의 양해각서(MOU) 12건을 비롯해 도합 66건, 49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 성사됐다.
열기는 동남아에서도 재확인됐다. 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2024 싱가포르 국제식품박람회'에서 수출상담 성과는 4180만 달러에 달했다. 정부 관계자는 "싱가포르 인삼 홍보관의 경우, 최적화된 기후와 토양조건에서 재배된 최상급 한국 인삼의 생산과정과 효능 등을 심도 있게 소개했다"며 "참관객 및 현지 유통업체 관계자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막걸리와 떡볶이 등도 큰 호응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우리 고유 식문화유산인 막걸리의 유네스코(UNESCO)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aT의 김춘진 사장은 "막걸리가 K-푸드의 대표 수출 품목이 돼 전 세계인이 막걸리를 즐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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