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생태의 건강성을 추구하고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을 보호해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산하 공공기관의 대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지급하는 통상 원고료의 20%에서 30% 정도를 책정하고 있다. 지식 노동을 기관의 권위와 헐값에 교환하는, 착취에 버금가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 10월 국내 최고의 비엔날레라고 자평하는 곳에서 비평가들에게 제시한 평론비는 30만원이었다. 지난 4월 지역의 모 도립미술관이 명시한 원고료 또한 25만원에 불과했다. 이 사실은 과거 본 란을 통해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일부만의 사례가 아닌데다,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재론의 여지는 충분하다.
최근에도 부산의 어떤 공공기관은 A4 10장에 달하는 원고의 고료로 13만원을 지급했다.(130만원이 아니라 13만원이다.) 영천시가 운영하는 모 예술창작스튜디오의 평론가 원고료는 2024년 기준 30만원이다. 고맙게도(?) 2020년에 비해 5만원 올랐다. 당시엔 교통비 포함 25만원이었다. 근거는 공무원들이 정한 저마다의 규정이다. 출자·출연기관이라서 그렇다거나, 지방자치 인재개발원의 수당 규격별 지급액 기준 등을 이유로 든다.
작품을 보기 위해 많게는 수백 킬로미터를 왕복하는 물리적 거리와 시간, 온갖 자료를 찾아가며 분석해 한 달 내내 쓴 글 값이 20만~30만원대라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본적인 민생고 해결조차 안 된다. 실질임금으로 따지자면 '0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평론계를 대변할 한국미술평론가협회의 대응은 안일하다. 현실에 둔감한 친목 모임인가 싶을 정도다. 개인이 아닌 단체의 발언이라면 조금 더 영향력을 갖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관련해 이렇다 할 발언은 별로 없다. 지난해 6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미술진흥법'에서마저 예술 매개자들에 관한 조항이 전무하다시피하자 소수가 모여 토론회 한번 연 게 거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주변에서 등을 떠미니 마지못해 진행한 듯한 여운이 컸다.
평론가들의 기대를 모은 '미술진흥법 시행령'(7월 26일부터 시행) 역시 진일보한 측면이 없다. 미술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진흥 정책을 추진한다기에 비물질 노동자들의 남루한 처우 과제도 포함될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미술진흥법에서처럼 평론가나 기획자 등에 대한 구체적 조항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도 '예산의 범위에서'로 제한해 처음부터 예외의 길을 터놨다.
오래 전부터 평론계에는 '비평의 죽음'이 부유하고 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긴 글이나 심도 있는 분석보다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다양한 관점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스스로 판단하는 문화적 흐름의 영향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내부의 문제도 있다. 법이 낡았거나 미진하다면 우리 자체라도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 그러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보단 문제의식 없이 응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과 기관은 변화할 이유를 체감하지 못한다. 형편없는 고료에도 대신 써줄 사람이 널렸으니 제도 변화에는 애초 관심도 없다.
작품의 의미 해석과 사회적 맥락에서의 분석, 예술적 기준 및 가치 설정 등의 미학적 소통이라는 측면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서 비평의 직능은 여전히 살아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이러한 평론의 역할과 가능을 알고 있다면 향후 설계할 '미술진흥 기본계획'에라도 평론가와 기획자들의 현황과 실태, 지원 방안 등을 섬세하게 다루는 게 맞다. 비평의 죽음은 곧 예술의 장례(葬禮)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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