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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서울] (168) 조선시대 죽음의 흔적 엿볼 수 있는 은평구 '진관근린공원'

지난달 23일 오후 한 어르신이 진관근린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김현정 기자

조선시대 죽음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는 진관근린공원은 은평구 소재 이말산에 자리했다. 산이 곧 공원인 셈이다. 이말산의 해발고도는 132.7m이며, 면적은 98만3791㎡에 이른다. '이말'은 '말리(茉莉)' 혹은 '재스민'으로 불리는 식물을 뜻하는데, 현재로선 산에 이 같은 이름이 붙은 연유를 알 수 없다고 한다. 구파발역 인공폭포에서 입곡교 앞 북한산 국립공원까지 이어지는 진관근린공원은 과거 조선시대 한양 사람들이 성묘를 다녔던 곳이었다.

 

◆참호·진지 등 군사시설 곳곳에

 

지난 10월 23일 오후 이말산 생태 놀이터를 방문했다./ 김현정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진관근린공원을 방문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로 나와 7723번 버스를 타고 6개 정류장을 이동해 생태공원앞·구립상림도서관 정거장에서 내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공원 입구에는 이말산 생태 놀이터가 설치됐다. 아이들이 숲을 자유롭게 체험하며 모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성한 놀이 공간으로 짚라인 타기, 징검다리, 나무집 놀이대, 인디언 집놀이, 나무 실로폰, 평균대 건너기, 흔들 밧줄 건너기, 림보 놀이대 등의 기구가 마련됐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하교하는 아이들이 줄줄이 학원 차에 실려가는 바람에 이날 놀이터는 어린이들 웃음소리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지난달 23일 오후 시민들이 진관근린공원에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김현정 기자

놀이터를 지나 걷다 보면 쟈스민정이라는 아담한 나무 정자가 하나 나온다. 공원으로 마실 나온 주민들은 정자에서 껌이나, 물 등을 나눠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흙길에 떨어진 밤송이와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열매가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케 했다.

 

눈을 크게 뜨고 바닥을 살폈더니 사람이 잡아 뜯은 것마냥 수십장의 잎과 함께 떨어진 상수리나무 열매들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요리 고수가 칼로 깍둑썰기를 한 것처럼 정교하게 잘린 나뭇가지 단면을 바라보며 '도토리거위벌레'를 떠올렸다.

 

작은 톱처럼 생긴 주둥이를 가진 도토리거위벌레는 자식들을 위해 온종일 나무줄기를 잘라내는 일을 한다.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 열매가 영글기 전 초록색을 띨 때 안에 알을 까 넣어 놓고는 나뭇잎 여러장과 함께 가지를 절단한다. 새들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수십장의 나뭇잎은 알이 든 열매가 땅에 떨어질 때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 10월 23일 오후 진관근린공원에서 군사시설을 발견했다./ 김현정 기자

자식 사랑이 지극한 도토리거위벌레 이야기를 되새기며 산을 오르다 보면, 무시무시한 경고 문구를 만나게 된다. '이 지역은 군 사격장으로 도비탄 및 불발탄에 의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지역이므로 민간인 출입을 금지합니다. 무단출입으로 인한 사고 발생시 군부대에서는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이를 위반한 자는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 제24조에 따라 처벌됩니다. 폭발물 의심 물체 발견시 폭발 위험이 있으므로 절대 접근 또는 접촉하지 말고 군부대로 신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는 안내문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둘레길 곳곳에 설치된 폐타이어로 만든 참호(야전에서 몸을 숨기며 적과 싸우기 위해 방어선을 따라 판 구덩이)와 콘크리트로 삼면을 두른 진지(언제든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설비 또는 장비를 갖추고 부대를 배치해둔 곳)가 스산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조선시대 분묘군…다양한 문인석 볼거리

 

지난달 23일 오후 진관근린공원에 금관조복형 좌문인석 1기가 세워져 있다./ 김현정 기자

군사시설 외 진관근린공원만의 볼거리가 하나 더 있다. 목 잘린 문인석(문관석)이 바로 그것. 문인석은 무덤 앞에 배치하는 석물 중 하나로 금관조복형과 복두공복형이 있다. 조선 초·중기에는 복두공복형의 문인석을 세웠고, 중종대(1506~1544) 이후에는 금관조복형을 주로 설치했다.

 

산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다가 금관조복형 좌문인석 1기를 발견했다. 다른 것들과 달리 온전한 형태였다. 이는 조선 명종 때 내시부 상선 노윤천 묘 하단의 금관조복형 좌측 문인석으로, 머리 부분이 떨어진 것을 정비 과정에서 접합해 세운 것이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인물상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띤 채 잔뜩 움츠러든 거북목 자세를 취한 게 현대 직장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신기하게 느껴졌다.

 

지난 10월 23일 오후 진관근린공원에서 금관조복형 문관석 2기를 찾았다./ 김현정 기자

진관근린공원에 크고 작은 문인석이 세워진 이유는 이곳에 조선시대 분묘군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능묘'에 따르면, 이말산 일대에는 서쪽 사면으로부터 우봉 김씨, 임실 이씨, 영천 이씨, 해주 최씨, 남양 홍씨, 완산 이씨, 옥구 임씨, 전주 이씨 은언군파 등 15세기 이래 사대부·중인·내시·궁녀를 포함해 다양한 신분층의 많은 묘가 시기별로 다채롭게 분포됐다.

 

대표적으로 숙종 때 역관이자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던 홍세태(1653~1725)의 무덤이 있다. 이외에 정3품 상다 김경량, 정6품 상세 정여손의 묘표가 있고, 현종의 보모상궁인 임상궁, 상궁 임실 이씨 등의 묘표가 확인됐다.

 

지난달 23일 오후 진관근린공원에서 봉분 3기를 발견했다./ 김현정 기자

이말산 일대에는 왜 무덤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걸까. '서울 洞(동)의 역사'에 의하면, 조선의 공식 법전인 '경국대전'에 도성으로부터 10리 안에는 무덤을 못 쓰게 하는 금장 규정이 있었다. 진관동은 성저십리 바로 바깥에 위치해 많은 묘가 만들어졌다. 특히 조선 왕실의 살림을 도맡아 했던 내시와 궁녀, 통역 일을 하는 역관들의 무덤이 많았다. 조선 제일의 역관 가문이었던 우봉 김씨의 집안 묘지 구역도 진관동 중앙에 자리한 이말산에 있었으며, 영조의 손자이자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 이인 또한 이말산에 안장됐다. 안타깝게도 조선의 제25대 국왕 철종의 조부인 이인의 분묘는 6.25 전쟁 중 유실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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