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근의 관망과 훈수] 쌀이 천덕꾸러기 돼서야
요즘 저녁 술자리에 앉으면 소주브랜드 '처음처럼'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국산 쌀과 보리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타 브랜드를 제치고 이 소주를 택한다는 설명이다. 한두번 겪은 게 아니다.
시중에서 가장 흔히 소비되는 국민 술, 희석식 소주. 각 제조회사들은 주정판매회사에서 주 원료인 주정을 사서 거기에 물과 감미료, 기타 첨가물을 넣어 만들 뿐이다. 이 때문에 주정회사도 아닌 특정 주류회사만이 굳이 소주병에 붙이는 '식품표시사항 라벨'에 굵은 글씨로 이를 표시하는 것이 의아했다. 소주제조회사가 특정 주정회사와 직거래하지 않고 9개 주정회사 제품을 판매대행하는 회사와 거래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구매해 쓰는 주정은 국산 곡물이라는 것을 부각시킨 것으로 이해된다.
소주의 주정은 1960년대까지는 쌀이나 잡곡으로 만들었다. 쌀 부족문제가 현안이 되자 정부는 1965년 쌀을 이용한 주정제조를 금지했고 수입산 카사바나 고구마 등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이후 1990년대들어 쌀의 사용이 허용됐고 요즘은 적극 권장하는 단계이나 비용문제 등으로 대량소비까지 확대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일각의 '국산 쌀 소주'에 대한 원인불명 '국뽕식'사랑을 애주가들은 다소 어리둥절해 할 수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쌀 문제에 골머리를 앓는 정부로서는 한줄기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기대가 생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일년내내 적정량의 쌀 수급과 가격안정 대책을 놓고 정치권, 농민과 씨름하고 있다. 올해 국회 농식품부 국정감사에서도 최대 화두는 단연코 쌀 문제였다. 지난해 정부가 쌀값을 80kg 기준 20만원선을 지키겠다고 공언했지만 올해 쌀값은 17만원중반대까지 추락했고 여야 국감위원들은 거세게 농식품부를 질타했다.
우리나라는 4차 산업화까지 구조 변화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하면서도 여전히 '농자천하지대본'을 금과옥조로 여겨서인지 공급측면의 쌀산업 구조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가장 큰 문제점은 쌀 소비량의 감소일 것이다. 1992년 112.9kg이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0년전인 2014년 65.1kg으로 절반가까이 줄었다. 다시 지난해는 56.4kg으로 더 줄었다. 어쩔 수 없다. 반면 연간 미곡생산량은 1992년 533만톤에서 2014년 424만톤으로 어느 정도 줄었으나 이후 큰 감소없이 370만톤선에 있다. 식생활의 변화로 먹거리 소비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쌀 생산현장의 변화는 물론 소비형태의 전환이 뒤따르지 못해 심각한 산업 구조조정 국면에 처한 상황이다. 식량안보측면도 있겠지만 생산량은 쉽게 적정수준으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수급구조적 문제에 대응해 쌀소비 확대 노력이 먼저 시작됐다. 1998년쯤이다. 이명박 정부때는 범정부 차원의 정책적인 노력이 본격화됐다. 쌀국수, 쌀막걸리, 쌀과자 등 쌀을 이용한 먹거리 개발과 '가래떡 데이(11월11일)' '쌀의 날(8월18일)'까지 만들며 소비독려가 있었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였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며칠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침밥 먹기'를 독려한다 해서 쌀소비가 늘겠나"며 혼잣말같이 허탈감을 토로했다고 한다. 쌀소비를 권장하는 즉석밥 나눠주기 행사에 참석한 뒤 느낀 소회였다.
송 장관은 일본의 사케(일본 술 혹은 청주)업계를 벤치마킹한 전통주산업을 장려해 볼 생각이라고도 했다. 쌀을 원료로 하는 일본 술이 가격은 다소 비싸더라도 보편화돼 있다는 점에서 국내 소주업계에도 적용한다면 쌀 소비확산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안보적 측면에서라도 생산을 수요에 못맞춘다면 소비를 늘려서라도 쌀 수급균형을 하루빨리 구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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