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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서

[주말은 책과 함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안자이 미즈마루 그림/김난주 옮김/문학동네

 

동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광팬이다. 하루키의 신간이 나오는 날 서점에 달려가 구매한 뒤 밤새서 소설을 다 읽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책장에는 하루키의 책들만 꽂혀 있는 '명예의 전당'이 별도로 존재할 정도다. 그만큼은 누구나 다 한다고 말한다면 한 가지 더 밝힐 것이 있다. 하루키가 좋아한다고 밝힌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챈들러, 트루먼 커포티 등의 작품을 모아 놓은 서가도 따로 있다.

 

최근 동생의 책꽂이에서 하루키가 쓴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꺼내 읽다가 머릿속에서 재밌는 생각이 흘러나와 파안대소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동생이 성난 얼굴로 하루키의 책들을 갈기갈기 찢은 뒤 불붙인 성냥을 던져 모두 불살라버리는 상상이었다.

 

동생과 달리 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작품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 못마땅해 언젠가부터 하루키의 소설을 멀리했다. 에세이는 머리를 식힐 겸 가끔 읽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젠 수필과도 작별 인사를 나누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하루키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한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은 하루키가 1983~1988년 '하이패션' 등의 잡지에 연재한 글들을 묶은 에세이집이다.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하루키의 후진 여성관은 '여성에 대한 피해의식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젊은 여자에 대한 고리타분한 편견이 눈에 가장 거슬린다. "옛날에는 주위에 여자가 많으면 긴장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도무지 책 같은 걸 읽을 수 없었는데, 최근에는 '젊은 여자들은 시끄럽고 자분대고 영 성가시군'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라든가.

 

"가끔 젊은 여자들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그녀들은 가난이 싫다고 단언한다. (중략) 그녀들은 가난이라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상상할 수 없으니 당연히 난감해진다. 젊은 여자들이 난감해하면 나 역시 난감해지니까, 그 시점에서 나는 얼른 화제를 바꾼다." 라는 식의 꼰대나 할 법한 생각들.

 

지나친 자의식 과잉도 헛웃음 나오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혼자 여행을 하다가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만나면 참 난감하다. (중략) 말을 거는 게 좋을지 걸지 않는 게 좋을지 잘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남이사 혼자 여행을 하든 말든 신경 끄고 그냥 가던 길 가는 게 사회 통념이라는 걸 하루키는 정녕 모르는 걸까. "너 뭐 돼?"라는 신조어가 떠오른다.

 

책에서 하루키는 쌍둥이 여자친구를 갖는 게 꿈이라고 고백한다. "쌍둥이 여자친구를 갖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처첩을 동시에 거느리고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듯하다. (중략) 그럼에도 나는 쌍둥이라는 상황을 좋아한다. 나는 그녀들이 지닌 은밀한 분열성, 어질어질할 정도의 증식성을 좋아한다. 그녀들은 분열하고 동시에 증식한다. 그리고 내게 그것은 영원한 백일몽이다. 내게 딱 한 명의 여자는, 때로는 너무 많고 때로는 너무 적다." 동생이 하루키를 경멸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대목이다. 참고로 동생은 현재 쌍둥이를 임신 중이다. 200쪽.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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