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꼽았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곳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짓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날뛰는 모습을 뜻하는 고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자들은 위임받은 권력을 사적인 이득과 편애하는 집단의 특혜를 위해 번번이 남용하고 악용한다"며 "그 최악의 사례가 12월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라고 비판했다.
교수신문의 이번 설문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전인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2일까지 이뤄졌다고 한다. 아마도 학계에선 작금의 사태를 예견했는지 모른다. "즉각 탄핵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진 이유다. 곳곳에서 행동하는 양심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갑작스런 계엄선포에 국민들이 국회로 모였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잘못된 권력을 휘두르면 저항에 부딪힌다.
2위에 오른 사자성어는 '후안무치'(厚顔無恥).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가 추천했다. 김 교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말을 교묘하게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르는 세태를 비판한다"고 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이 내놓은 담화가 그렇다. 그는 계엄령 선포·해제 이후 5일 만인 12일 대(對)국민 담화에서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또 지난 14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 가결 이후엔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국가 신인도 추락, 주식시장 폭락, 내수경기 위축, 정국 혼란, 국민 충격에 대한 자기반성과 미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안긴 실망감과 허탈, 분노는 안중에 없었다. 공감능력, 현실인식이 없는 '유체이탈'로 다가왔다. 유체이탈이란 현재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고, 사실 확인을 하지 못한 채 다른 이야기를 함으로써 제 3자가 황당무계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다.
다행인 것은 아픈 역사가 우리를 지켰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박찬대 국회의원의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이 귀에 맴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던 중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보고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이다."
44년 전 고통과 아픔이 오늘의 내란을 잠재우고 국민과 나라를 구했다. 권력자의 도량발호가 몇 시간 만에 물거품이 될 수 있었던 건 오로지 국민의 양식과 행동이었다. 여전히 유체이탈 상태의 후안무치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 결말은 새드엔딩이다. 한 때의 달콤한 권력은 한 낮의 꿈이 되었다. 21세기에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그 책임은 가볍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사회적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국가 신인도를 되찾고, 주식시장과 환율시장이 안정을 찾아야 한다. 소비와 투자 등 꺼진 내수경기를 살려야 한다. 언제쯤 정치 걱정 없는 나라를 만날 수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의 참담함과 고통은 다시 국민의 몫이다. /금융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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