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0년대 말, 아이들은 검은색 리본을 왼쪽 가슴에 달고 다녔다. 조그만 유치원생들까지 영문도 모른 채 한동안 달고 등원했다. 그 10·26 사태에 이어 또 하나의 군부독재가 생겨났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거쳤으나 군인출신 정치는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지속됐다.
하지만 이 문민정부의 탄생은 노태우 정권과의 야합에서 비롯됐다는 오명을 벗기 어려웠다.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나라는 이른바 IMF 위기(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고 정권은 교체됐다. 야합의 최대 피해자이자 군정의 대척점에 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지나며 우리나라 정당체제는 양당제가 굳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검정 리본을 달던 아이들은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 중에 1개만을 선택해야 했다. 시대의 흐름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정치지형이 동서로 양분되는 지역주의는 심화했다. 양당의 기반이 각각 한쪽은 영남, 한쪽은 호남이기 때문에 그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감됐다. 정치보복이 난무했다. 한편으론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이나 노동자 이익을 내세우는 정당 등이 점차 설 곳을 잃어 갔다. 상대편에 지면 끝장이라는 인식이 대두됐고 제3 당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지난 30~40년 사이 어렵사리 얻어 낸 민주주의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칭송한다. 하지만 군부가 자취를 감춘 자리에 지난 20~30년 사이 또 다른 난제가 자리잡은 것도 사실이다. 호남 대 영남, 강남 대 강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 구도다. 무엇보다 진영논리가 상대를 헐뜯고 또 헐뜯었다.
■혼돈의 시대, 개헌론 다시 수면 위
한 달 전 12·3 계엄 사태가 한반도를 뒤흔들었다. 이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말들이 많다. 이를 기화로 개헌을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정치사에선 위기 때마다 내각책임제(의원내각제)와 4년 중임제 등이 줄곧 거론되곤 했다. 그러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늘 흐지부지됐다.
이번에도 차기 대선 잠룡으로 꼽히는 인물 중 일부가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에 대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은 지난달 하순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선 잠룡 또는 정치인이) 이 시기에 개헌을 언급할 수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개헌을 추구하는지 제시해줬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최수영 정치평론가도 개헌론이 이 같은 시국에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는 보수진영뿐만 아니라 우원식 국회의장(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개헌의 필요성을 주창한 바 있다고 전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되 5년 단임제의 4년 중임제 변경을 제시한 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3일 "승자독식의 의회 폭거와 제왕적 대통령제를 허용하는 이른바 87헌법체제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SNS에 썼다. 그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치권 전체가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앞서 지난달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한 자리에서 "대통령 중심제가 과연 우리 현실과 맞는지 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한민국헌정회 소속 정치 원로들의 경우, 지난달 24일 "총체적 난국 돌파를 위해 국민 총의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것은 개헌"이라며 '선 개헌, 후 대통령 선거'를 제안했다. 헌정회는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제왕적 대통령 권한 분산, 국회의 민주성 강화를 위한 양원제(상·하원 또는 참·중의원 등), 지방분권 신장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한 언론매체의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분의 3이 '개헌이 필요하다'라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45%가 4년 중임제를, 15%는 내각책임제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개헌 여부는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세대·남녀·집값·도농 편차
그간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다. 진영논리에 따른 정치 양극화는 주요 현안에 대해 첨예한 대립을 초래했다. 입법이 밀리면서 각 부처는 정책 추진의 원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사회·경제 문제가 심각하다. ▲연령대별 고용 양극화 ▲남녀 임금격차 ▲정규-비정규직 격차 ▲생산가능인구의 후퇴 ▲농촌 및 지방 소멸위기 ▲주택가격의 양극화 등이다.
우리나라는 38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8년째 임금격차 1위에 오를 전망이다. 작년 기준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29.3%에 달했다. 남자 중위임금(고임금 순으로 일렬로 세웠을 때 정중앙 값)이 월 400만 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여자 중위임금은 이보다 29.3% 적은 282만8000원에 그친 것이다.
재작년 남녀 격차는 31.2%로, 회원국 38곳 중 유일하게 30%대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11.4%보다 20%포인트(p) 크다. 아·태 지역만 봐도 뉴질랜드(6.3%), 호주(9.9%), 미국(17.0%), 일본(21.3%) 등 우리보다 크게 낮았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는 174만8000원으로 역대 가장 큰 수준까지 벌어졌다. 정규직(월평균 379만6000원)이 400만 선을 향하는 반면, 비정규직(204만8000원)은 이제서야 비로소 200만 원을 넘어섰다. 정규직 임금의 경우, 지난 2007년에 이미 200만 원대에 진입했다.
게다가 청년층의 취업자 수 감소는 코로나19를 거친 뒤에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20대 임금근로자 열에 넷은 비정규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 최대 비중이다. 특히, 20대 비정규직 근로자 가운데 시간제로 일하는 청년 수가 81만7000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40만 명 넘게 늘어났다. 시간제 근로자란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보다 1시간 이상 짧게 일하는 근로자를 일컫는다.
노인인구 증가와 유소년인구 감소에 따라 지난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1980년대 후반 수준까지 내려왔다.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생산가능인구는 총인구의 69.4%였다. 10년 전인 2014년 11월(73.2%)보다 3.8%p 줄었다. 농촌 지역 다수는 소멸위기에 처해 있고 집값은 지역에 따라 심한 편차를 보인 지 오래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 상황하에 사회·경제 문제는 이같이 방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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