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결정이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12·3 계엄사태 이후 정치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부터 하향되고 있다. 최근 국가미래연구원은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67%로 전망했다. 국제금융센터가 취합한 작년 말 기준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1.70%)보다 낮다. 연구원은 정치적 이슈, 금융시장 불안정, 높은 가계부채와 기업부채 수준, 장기 저성장, 인구구조 변화를 우리 경제의 대내 변수로 꼽았다. 대외 변수도 우호적이지 않다. 달러화 강세, 미중 무역 분쟁, 미 정책의 불확실성, 중국 경기 둔화 등 부정적인 이슈가 수두룩하다.
주요 기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국회예산정책처 2.2%, 산업연구원 2.1%, 한국개발연구원(KDI) 2.0%, 한국은행 1.9%, 현대경제연구원 1.7% 등이다. 나라 밖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1%,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2.0%를 전망치로 제시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돌발 변수가 생기면서 하향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한 사람의 무모한 선택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화재' 상황에 기름을 부은 꼴이다.
소비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앞날이 보이지 않으니 지갑을 열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1~11월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2.1% 감소했다. 2003년(-3.1%) '신용카드 사태' 이후 같은 기간 기준으로 21년 만에 최대 폭이다. 소비 절벽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내구재(자동차·가전 등)와 준내구재(의복 등), 비내구재(음식료품 등)를 포함한 모든 상품군에서다. 내구재·준내구재·비내구재가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1995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반영되는 작년 12월 통계가 더해지면 연간 기준 최대 낙폭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투자심리도 심상치 않다. 국내 기업들의 올해 연구개발(R&D) 투자 심리가 최근 10년 새 최악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가 최근 국내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R&D 계획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의 R&D 투자 심리를 나타내는 RSI는 지난해 11월 투자 부문에서 94.6, 인력 부문에서 93.7로 전년도와 유사했다. 하지만 12월 이뤄진 조사에서는 각각 79.6, 84.2로 나타나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된 것이 확인됐다. 산기협이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RSI 지수가 90 이하로 조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나마 대한민국을 지탱하고 있는 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금융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인 신년인사회에서 "IMF 금융위기(1997년)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위기를 넘겼고,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극복했다"면서 "이번 정치적 위기는 금융이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금융업계가 흔들림 없는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정상적으로 작동함을 대내외에 알려야 한다"면서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을 믿는다"고 했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어둠을 만들었지만 금융이 빛을 향하고 있다. 한강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빛을 향하고 있다면 어둡지 않다'고. /금융부장 bluesky3@metr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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