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아야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논어. 爲政 11)"는 구절은 보수와 진보가 불가분의 보완관계에 있어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음을 갈파하고 있다. 배운 것을 새기고, 새롭게 터득해 가면 그 배움과 응용이 깊어지고 넓어져 커져 사표가 될 만하다. 여기서 고(故)는 이미 배워 간직하고 있는 것이요, 신(新)은 지금부터 새롭게 터득해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서로 보완적이어야 사람들의 삶을 점점 풍요롭게 할 수 있는데 서로 제 길만 가려다 보면 공존이 아닌 공멸의 길을 가야 한다.
역성혁명을 치른 나라에서 유교 정신을 빌미로 그칠 날이 없었던 골육상쟁은 온고지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였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배운 것을 맹목적으로 외우고 그에 집착하여 서로 따지기만 하고 트집만 잡고 늘어지니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이비 유학자들이 탐욕과 정쟁에 찌들어 사면팔방으로 나뉘어 목숨을 건 이전투구는 들개와 늑대들의 지칠 줄 모르는 싸움판이었다. 오늘날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고 저 혼자만 살겠다며 거짓으로 국민과 민생을 외치는 욕심 사나운 정치인들도 그들을 닮아가려는 걸까?
정이지, 타락한 보수도 무섭고 거짓 구호만 요란한 진보도 겁난다. 보수의 탈과 진보의 가면을 쓰고, 무엇이든 "네 탓이다"라며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조성하고 적개심을 부추겨 네 편과 내 편으로 갈라치기 하려는 광경은 보기도 지겹다. 묵은 때와 먼지를 털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가자고 하면서 사람 살아가는 기본 도리를 외면한다면 막무가내 수구세력으로 전락하게 된다. 반대로 제 밑도 닦지 않는 자들이 새롭게 가자고 외치는 길이 현실과 이상을 외면한 구호만 외친다면 나라의 미래를 어찌 기약하겠는가?
보수와 진보의 말싸움을 들여다보면, 누가 보수주의 관점을 가졌는지, 누가 진보주의 시각을 가졌는지 혼란스럽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상은 없고 환상에 빠진 거짓 진보와 그저 약삭빠르기만 한 가짜 보수의 말다툼을 따라 사람들이 엉뚱하게 편을 가른다는 점이다. 쓸데없이 적대 감정을 가지며, 까닭 없이 미워하다 보니 사회 역동성을 무뎌지게 하며 성장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려면 견제와 균형이 절대 필요하다. 막무가내 한쪽으로만 노를 젓다가는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다가 엎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살이에서 온고(溫故)는 변할 수 없는 전통적 가치를 옹호하고 보전하려는 다짐이고, 지신(知新)은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여 변화와 발전을 이루려는 자세다. 지킬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야 하는데, 무엇이든 그냥 움켜쥐려다가는 퇴영의 길을 가야 한다. 변화를 모색할 때는 과거나 현재보다 나아진 길을 가야 하는데, 무턱대고 다른 길을 가자고 하다가 만사를 그르치고 공멸의 길을 가기 쉽다. 경제 성장과 발전 또한 온고지신 자세로 전통적 가치를 지켜가면서 현실을 바탕으로 미래지향 가치를 추구해야 기대효과가 높아진다. 평범한 이치를 아무도 모르는 척 행동하니 답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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