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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잘 지내길 바라"

이별은 흔적을 남긴다. 특히 사랑이 짙을수록 헤어짐의 생채기도 깊다. 흔히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말로 위로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작별한 이들에겐 공허함만 부풀릴 뿐이다. 사랑과 상실은 동일한 서사 안에서 반복됨을 모르진 않음에도 그렇다.

 

프랑스 개념 미술가 소피 칼(Sophie Calle)은 사랑과 이별이라는 일상적 경험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 미술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그녀는 2004년 연인으로부터 헤어지자는 편지를 받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사랑한다면서도 갈라서길 원하는 듯한 편지에 칼은 대체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마지막에 쓰인 "Take care of yourself(잘 지내길 바라)"라는 문장은 꽤나 혼란스러웠다. 다시 만나자는 것 같기도 하고 떠나겠다는 것 같기도 한, 한마디로 이게 무슨 뜻일까 싶었다.

 

이에 소피 칼은 그 편지를 문학가, 철학자, 기자, 정신 분석가, 배우, 가수, 변호사, 음악가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 107명에게 각자의 전문적 관점으로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철학자는 사랑과 이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펼치며 편지 속 문장이 어떻게 윤리적·존재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살폈고, 정신 분석가는 편지를 보낸 사람의 심리 상태와 무의식적 의도를 추론했다. 이 밖에도 댄서는 춤을, 가수는 노래를, 변호사는 법적인 관점에서 책임과 계약적인 요소를 뽑아냈다.

 

소피 칼은 그 결과물과 과정을 글과 사진, 영상 등으로 기록했다. 전시를 열고 책을 만들었다. 이후 그의 '이별 극복기'는 거대한 다원 예술 프로젝트로 완성됐다. 바로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 국가관에서 처음 공개된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이다.

 

개념 미술의 중요한 특징인 텍스트와 다중 해석 가능성에 주목한 이 작업은 '부재'를 화두로 한 전작들의 연장이다. 그녀는 1981년 베니스의 한 호텔 객실 청소부로 일하며 손님이 나간 객실을 촬영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자취를 담은 'L'Hote'(호텔, 1981)이라는 작품을 만든 적이 있다.

 

에펠탑에 작은 방을 설치해 놓고, 방문객들과 같이 누워 대화를 나눈 작업 'Room with a View'(전망 좋은 방, 2002)에서마냥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 역시 누군가의 참여로 이뤄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베니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성을 몰래 따라다니며 그의 행적을 기록한 'Suite Venitienne'(베니스의 추적, 1980)이나, 자신이 타인의 관찰 대상이 되는 경험을 다룬 'The Shadow'(그림자, 1981) 등은 'Take care of yourself'와 마찬가지로 사생활과 공적 영역, 관음과 관찰을 넘나드는 구조로 돼 있다.다만 'Take care of yourself'의 경우 이전 대비 사적인 이야기를 사회적·문화적 담론으로 확장시키면서, 예술과 삶의 경계가 보다 얇아진 측면이 있다. 실재를 벗어나 심리의 부재가 더욱 두드러진다는 점, 예술은 더 이상 작가 개인의 내러티브에 머무르지 않고 집단적 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열린 결말이 가능함을 보여준 사례라는 것도 하나의 차이다.

 

'Take care of yourself' 프로젝트는 1970년대 이후 지속된 페미니즘 미술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나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여성적 경험의 재구성과 맞닿아 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My Bed'(나의 침대, 1998)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h)의 'The Artist Is Present'(예술가가 여기 있다, 2010)에서처럼 파국적인 연애와 개인적인 상실을 예술적 문법으로 변환하는 과정은 페미니스트 아트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피 칼은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이별의 아픔도 무뎌졌다고 했다. 그녀는 가슴 아픈 이별을 객관화해 공유함으로써 마음속 상흔을 완전히 털어냈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이의 바람대로 잘 지냈다. 아니, 잘 지내고 있다.■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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