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
웹서핑을 하다가 '길거리에 버려진 모나미 펜'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보고 충격에 휩싸인 적이 있다. 번화가를 찍은 사진 속 남성 중 약 97% 이상이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글쓴이는 그들의 클론(복제) 패션을 '모나미 펜'에 빗대 희화화한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에게 자신이 후지게 보이는 걸 원치 않는다'는 명제가 참이라 가정한다면, 모나미 펜으로 불리는 남자들이 저 옷을 입은 건 멋져 보여서일 것이다. 그들이 '하얀색 윗도리에 검은색 아랫도리를 받쳐 입으면 근사하다'는 패션 철학을 갖게 된 건 한 개인의 미적 감각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어디서든 눈에 튀지 말고 개성을 죽이고 살 것을 강요받은 사회적 압박에 의한 것일까.
무심코 옷장에 걸린 옷을 입고 놀러 나갔다가 사진이 찍혀 '모나미 펜'이라고 놀림당하지 않으려면 수용 미학에서 강조하는 '창조적 독해력'을 갖춰야 한다.
'교수대 위의 까치'를 쓴 미학자 진중권은 "작품을 스스로 읽는다는 것은, 작품을 보며 스스로 물음을 제기하고 대답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작품은 제작된 순간에 완성되는 죽은 '물건'이 아닌 끝없는 물음과 답변의 놀이를 통해 영원히 자신을 형성해 나가는 '생물'이다"고 말한다. 작품에 패션을 대입해도 마찬가지.
미학자 진중권이 집필한 '교수대 위의 까치'는 프라 안젤리코의 '조롱당하는 그리스도', 알브레히트 뒤러의 '책을 삼키는 요한', 티치아노 베첼리오의 '신중함의 알레고리' 등 12개 회화 작품을 작가가 어떻게 독해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기에 모인 글들은 독자들을 대신해 그림을 읽어주기 위한 게 아니다"며 "'범례적' 성격의 이 책은 독자들을 향한 적극적인 독해의 요청, 다시 말해 '그림을 이처럼 읽어보라'거나 '이와는 다른 식으로 읽어보라'는 채근에 가깝다"고 밝힌다.
요하네스 굼프의 '자화상'을 다룬 부분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다. 굼프는 관객에게 등을 돌려 얼굴을 감추고는 화폭 위에 거울에 비친 '영상'과 캔버스에 그려진 '모상'만 남긴다.
진중권은 "화가가 등을 돌려 자신의 진짜 얼굴을 감춤으로써 반영과 재현의 제재가 아예 사라지면서 남은 건 '복제'와 '복제의 복제'"라며 "이는 '원본 없는 복제'라는 '시뮬라르크'의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한다"고 설명한다.
거울 속의 내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외면할 때, 거울 속의 나는 독립적인 인격이 된다. 모델과 상관없이 제 의지를 가지고 따로 움직이는 재현.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느 것이 나인가. 뒤통수를 보이는 저 머리인가, 아니면 거울 속 얼굴인가, 그것도 아니면 캔버스 위의 얼굴인가. 책의 물음에 당신은 뭐라 답하겠는가. 288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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