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이탈리아의 개념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통째로 훔쳐 전시회를 열었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선 자신에게 허용된 전시 공간을 향수 광고 에이전시에 팔아넘기는 기행도 벌였다. 1995년 열린 광주비엔날레에 'Tie'라 명명한 2㎝짜리 개미 형상의 조각 한 점을 보낸 건 꽤나 유명하다.
심지어 그는 1999년 돈과 권력으로 물든 비엔날레를 비틀기 위해 가상의 비엔날레인 캐리비언비엔날레를 창설, 크리스 오필리(Chirs Ofili),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등의 참여 작가들과 함께 세인트 키츠라는 서인도 제도의 한 섬에서 휴가를 보내는 프로젝트를 펼치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리는 카텔란은 새로운 미술사적 의미를 통해 예술의 이상성을 제시하고 미술계를 정복하겠다는 순수한 감정 따윈 일찌감치 내다 버렸다. 차용, 풍자, 유머를 사용해 기존 가치 체계를 자극하며 우리가 가장 불편해하는 것, 금기시하는 주제들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희화화해 거리낌 없이 내놓았다. 이를 달리 말하면 '비판적 유희'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 유희'의 대상은 넓다. 정치, 사회, 종교, 미술계를 넘나든다. 일례로 성경에 등장하는 구시(유대인 시간으로 오후 3시이자,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선종한 시간)를 빗댄 '아홉 번째 시간(La Nona Ora)'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가톨릭교회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요한 바오로 2세)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깔린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종교적 권위와 타락, 인간의 취약성을 꼬집는 조각으로,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2023년 리움미술관 전시에도 출품됐다.
일주일이면 썩어 없어질 허상의 기호로 바나나 한 개를 벽에 덕트 테이프로 붙여 놓은 게 전부인 '코미디언(Comedian)'(2019)은 동시대 미술 시장의 투기적 성격과 비합리성을 지적한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1000원 남짓할 바나나 한 개가 처음엔 1억원을 웃돌더니 2024년엔 86억원에 거래되는 미술 시장 자체가 그에겐 코미디 같은 현실인 셈이다.
조롱에 가까운 카텔란식 어법은 '아메리카(America)'(2011)라는 제목의 작품에서도 동일하다. 그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물건인 '변기'를 18K 금으로 만들어 2016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화장실에 설치했다. 총 103㎏의 금이 사용돼 일명 '황금 변기'로 통한다. 2019년 영국 블레넘 궁전 전시 중 도난을 당하면서 더욱 화제가 된 작품이다.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아메리카'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비판함과 동시에 극단적인 부와 사회적 불평등, 예술의 가치에 대해 질문한다. 예술이든 인간관계든 그저 돈이 우선인 현실과 소수의 권력이 그렇지 않은 이들의 몫과 기회까지 모두 쥔 채 사회적 자본마저 세습하는 구조를 비판하고 있다.
부의 불균형과 자본의 다소가 곧 계급이자 미래의 자리까지 결정하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에서 곱씹게 되는 작품이지만, 한편으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실용성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의 민주화라는 측면도 엿볼 수 있다. 특히 한 끼 식사로 10만원짜리 호텔 뷔페를 먹건, 몇 천원짜리 김밥 한 줄을 먹건, 배설은 동일하다는 사실은 카텔란식 풍자의 정점이다.
익살스러움 뒤에 숨겨진 진지함을 특징으로 하는 카텔란의 모든 작업은 부조리한 것들에 관한 '냉소적 진술' 혹은 '시니컬한 농담'이다. 점차 지루해지는 동어 반복과 맥락상 다다이즘(Dadaism)이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지만 작품을 통한 그의 발언들은 저항 없이 습속 돼온 사회의 폐단과 상류 의식에 금을 낸다. 그의 농담 하나가 파급력이나 의미 면에서 1000개의 대중 취향 의존적 작업들보다 낫다, 훨씬.■ 홍경한(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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