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保守), 정치 용어로 쓰일 때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며 점진적 변화를 꾀한다는 표현이다. 한자의 뜻을 풀어봐도 보전할 보(保)에 지킬 수(守)다. 보편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혁(保革·보수개혁)을 가르는 기준은 체제 변화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반공(反共)이었다는 게 정치사의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그간 '자·타칭' 한국의 보수라고 분류되던 정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반공을 내세웠다. 이들은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기보다는, 반대 정파를 짓누르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2025년 현재도 마찬가지다. 반공을 초석으로 쌓아 각자도생을 새긴 집에 민족주의는 흔적조차 없다. 각자도생에 충실하기에, 이들이 한때 언급한 '따뜻한 보수'는 허상인 셈이다.
그들이 그렇게도 외치는 질서 유지는 이 집에 발조차 들여놓지 못했다. 국민들에게 외주를 줬으니까. 질서 유지는 87년 체제의 창조자이자 유지자였던 평범한 국민들의 몫이었으니.
이들은 여전히 반공을 무기로 자신의 지지층을 자극한다. 냉전이 종식된 지 35년쯤 됐고,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지 80년이 되어가는데도. 그리고 이는 역설적으로 이들의 이념적 무기고가 빈약함을 방증했다.
하지만 80년간 '반공 원툴'로 움직였던 이 집단이, 이제 드디어 보수라는 이름을 반납하려나보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 12·3 비상계엄 사태는 체제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게 명징해졌다. 탄핵심판을 지켜본 국민들은 비상계엄의 주동자들이 영화 '서울의 봄'을 2024년 12월에 재현하려 했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아니, 이미 2024년 12월3일에 본능적으로 느꼈기에 분노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의 주동자들은 2025년에도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이 논리가 먹히는 극우 지지층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게 문제다. 보수정당이라 주장하는 집단은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수자"는 발언을 일삼으며 이들에게 구애한다. 사라진 줄 알았던 백골단도 등장했다. 법 체계상 가장 상위에 있는 게 헌법임에도, 이들은 헌법 위의 권한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나라의 근간인 헌법마저 부정하는 걸 보니, 드디어 보수라는 이름과 헤어질 결심이 섰나 싶다. 앞으로 다가올 보수 재편의 역사를 위해, 건투를 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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