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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김양팽의 일본 이야기] 노인과 바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어느 여름날 강한 태풍으로 인해 우산도 제대로 쓰기가 어려운 날이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약 30분, 자전거를 타면 10분 정도 거리. 평소에도 비가 오는 날이면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기에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집을 나섰다. 잠시 후 강한 바람 때문에 우산을 든 손에 힘이 더 들어가서 한 손으로 자전거를 운전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 우산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자전거는 쓰러져 버렸다.

 

나름 자전거를 잘 탄다고 자부했었는데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지다니 참으로 창피했다. 물론 태풍 때문에 길 위에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아무도 날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체면을 구겼다는 생각에 서둘러 수습하기 시작했다. 우산은 바람에 뒤집혀서 몇 바퀴 구른 뒤라 부러진 살들이 앙상하게 보였고 자전거는 넘어지면서 핸들이 돌아가 있었다. 그리고 넘어지면서 어디에 걸렸는지 바지가 찢어져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손바닥은 까여서 피가 나고 있었다. 완전 최악이었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역대급 태풍이었고 전국적으로 그 피해가 매우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는 태풍이 오면 절대 자전거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며칠 후 TV 속에서 한 노인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그 노인은 조그만 어촌마을에 사는 어부였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은 유명한 소설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말 그대로 바닷가에 사는 노인의 인터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 같은 내용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인터뷰를 보면서 '노인과 바다'를 처음 읽고 느낀 감정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노인이 인터뷰하게 된 사연이 소설만큼이나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연은 며칠 전 내가 최악으로 기억하게 된 태풍과 연관이 있었다. 인터뷰 당시 노인이 사는 주변 마을의 모든 어선이 그 태풍으로 파손되어 조업할 수 없게 되었는데 유일하게 노인의 어선만 부서지지 않아 혼자만 조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운이 좋아 그랬다면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위력이 강한 태풍 소식이 들리자 대부분 선주는 배를 항구에 피신시켰지만, 그 노인은 오히려 배를 끌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다. 태풍 소식이 들리면 배들은 항구로 피신하는 일반적이다. 그런데 배를 끌고 바다로 나갔다는 것은 정말로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가 없다. 노인은 높은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해서 태풍을 가로지른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만이 배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항구에 정박해 놓은 배들이 모두 피해를 보았고 노인의 배만 무사히 태풍을 이겨낸 것이다.

 

노인은 주변 항구에서 자기 어선만 유일하게 조업하고 있으니, 수입이 많이 늘었다고 유쾌한 웃음을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노인의 웃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입안이 어색하게 보였다. 그것은 이빨이 몇 개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강한 파도를 뚫고 배를 운전하면서 워낙 세게 이를 꽉 깨물어 여러 개의 이빨이 빠졌다는 것이다. 배를 살리고 이빨을 잃은 것이다. 같은 태풍을 경험했는데, 나는 왠지 태풍에 진 기분이라면 노인은 태풍을 이겨낸 영웅과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인 어선을 지키기 위해 어려운 도전을 한 점에 있어서 소설 속에 나오는 노인과 오버랩되어 보이고 있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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