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오래 전 정신병동에 출근한 첫날, 병동을 둘러 보던 중 한 입원한 할머님 환자 한 분이 필자에게 노쇠한 목소리로 질문을 하셨다. "젊은이 여기 화장실이 어디있어요?" 그래서 아주 친절하게 할머님을 화장실까지 안내해 드렸다. 열심히 근무해야 하는 의무감 이전에 노인을 공경하는 기본적인 예의 때문에도 책임감을 가지고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할머님께 화장실을 안내 해주는 일을 거의 1년 반 반복해서 모셔다 드려야 했다.
젊을 때는 잘 몰랐고 또 공감하지 못했던 질문이 다시 자연스럽게 머리 속에 떠오로는 때가 있다. 할머님이 치매에 걸려 반복하던 이 말은 단순히 공간적인 위치만을 물었던 건 아니지 않을까? 그 할머니는 자신이 있는 곳이 잠시 머무는 병원이라는 공간인 것으로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 물었던 화장실의 위치는 사실 '젊은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아니였을까.
우리는 길에서만 길을 잃지는 않는다. 집을 나온 청소년, 자신이 누군가로 부터 버림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 자신의 진로와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누군가, 확실하게 자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당한 사람들, 그들은 모두 길을 잃은 사람들이다. 또 어디로 갈지 모르고 어떻게 할지 모르고 그래서 자신이 길 잃은 고아 같다고 표현하는 말은 단순한 비유나 은유가 아니라 실재 장소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신경과학적으로 길을 찾는 능력은 단순한 방향 감각이 아니다. 해마(hippocampus)는 공간적 기억을 담당하는 중요한 뇌 구조로, 우리가 '인지 지도(cognitive map)'를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기능이 저하되면 단순히 길을 못 찾는 게 아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 기억, 감정의 안정성까지 잃어버리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 초기 증상이 방향 감각의 상실에서 시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우리가 GPS에 의존하면 할수록 이 뇌 기능을 덜 쓰게 된다는 점이다. 마이클 본드라는 심리학자는 "지도 없이 세상을 누비던 우리의 탐험 본능이 퇴화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낯선 길을 걸을 때, 뇌는 끊임없이 환경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 이상 직접 길을 찾지 않게 되면, 뇌도 더 이상 탐험하지 않는다. 이건 단지 공간적인 문제 만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물리적 길을 잃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더 자주 방황할 수 있다.
SNS 속 타인의 삶은 잘 정비된 내비게이션 경로처럼 보이지만, 정작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정해진 스펙, 직장, 관계의 루트, 해야만 할 일들, 정해진 코스를 강박적으로 따라가며 '방황하지 않도록' 노력한 결과,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길을 잃는다. 마치 매일 같은 길을 가는 버스 운전기사가 목적지를 잊은 채 운전대를 잡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말이다.
인간은 "길을 찾는 존재"일 뿐 아니라 "길을 잃을 수 있는 존재"이다. 방황하는 능력은 우리 뇌에 본능적으로 새겨진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라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직진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샛길을 탐색하고, 돌아가고, 멈추고, 다시 걷는다. 그것이 그들의 뇌가 성장하는 방식이다.
현대 사회는 이 방황을 일찍 금지한다. 놀이터 대신 학원, 골목 대신 실내, 고민 대신 정답과 정해진 코스. 우리는 방황하지 않도록 철저히 훈련받는다. 그러나 방황하지 않고 도착한 목적지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다.
우리가 정신적으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오히려 때로는 길을 잃고 방황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길을 만들고, 이 공간과 장소에서 자신을 확장하는 방법이다. 명확한 경로는 우리를 아이러니하게도 길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방황이란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거다.
우리 조상들처럼 밤에 별을 보고 낮선 곳으로 여행하던 그 탐험가가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뜻이고, 그탐험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내가 여기 있니?" 그 물음에 답하려면, 우리는 스스로 길을 잃는 연습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진성오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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