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순 지음/은행나무
임성순 작가의 단편 6개를 묶은 소설집 '회랑을 배회하는 양떼와 그 포식자'들은 인간성의 상실을 다룬 책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첫번째 이야기 '몰:mall:沒'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몰의 주인공은 갓 전역한 청년이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공사 현장서 곰방 일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누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다.
어느날 평소와 달리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몰려와 봉고와 그레이스에 일꾼 오십여명을 태우고 어딘가로 향한다. 승합차 여섯대가 도착한 곳은 난지도의 정상. 곰방도 기능공인데, 쓰레기 일에 곰방을 불렀다며 불쾌해하던 인부들은 검은 양복의 경고 한 방에 입을 다문다. "지금 국가적 위기상황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오늘 하는 위대한 국가적 책무에 충실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오늘 일은 어디서 떠들지 마라. 혓바닥 삐끗 잘못 놀리면 남산에서 만날 테니까" 임무는 쓰레기 산에 실려온 백화점 건물의 잔해에서 시신을 찾는 일.
TV 뉴스에서 백화점 회장의 만행을 들은 일꾼들은 그를 욕하기 바빴다. 회장은 건물이 무너진 데 대한 사과는커녕 "나한테 뭐라 하지 마라. 백화점이 무너져 내 손해도 막심하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내린 명령은 "물건을 빨리 빼라"였고, 직원들에게는 "아직 괜찮으니까 영업 끝날 때까지 사람들 대피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다.
회장을 흉보는 사이 덤프트럭이 쓰레기 산 위에 무너진 백화점 잔해를 부러 놓았다. 핏자국이 남은 철근 콘크리트 덩어리, 검붉은 얼룩이 진 신발, 뭉그러진 사람들. 말없이 시신을 수습하던 인부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무너진 잔해에서 밍크코트, 귀금속과 금시계, 금가락지를 발견한 일꾼들은 돈 되는 것들을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주인공은 얼굴이 화끈거려 몸을 돌려 달아나다 검은 양복과 마주친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호두를 굴리는 그를 보며 주인공은 깨닫는다. 저 금붙이들이 침묵의 값이란 걸.
수색이 끝나갈 무렵 주인공은 쓰레기 더미에서 누이처럼 새끼손가락과 약지에 봉선화 꽃물을 곱게 들인 사람의 손을 찾아낸다. 그는 틈 사이로 내민 손에 깍지를 끼고 밖으로 힘껏 당겨보지만 손의 주인을 구해내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만수 아저씨가 주인공에게 묻는다. "막내야, 백화점이 왜 무너졌는지 아냐?" 그는 생각한다. 붕괴된 백화점 아래 사람들이 있었다. 사고를 막을 수 없었을까. 사람들을 구할 순 없던 걸까. 끝내 그는 알아차린다. "망각했으므로 세월이 가도 무엇 하나 구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248쪽.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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