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고질병은 자산 쏠림과 비생산적 신용 팽창이다. 낮은 금리는 대출을 부추기고, 그 자금은 생산투자보다는 대부분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간다. 부동산 가격이 실물 가치보다 빠르게 상승하면 자산 보유자는 레버리지를 통해서 자산규모를 키울 수 있지만, 무주택자는 부채만 키워서 서로의 격차가 더욱 벌어진다. 그렇다고 금리를 높이면 집값은 잡겠지만 실물경제 전체를 짓누르고 이미 벌여놓은 가계부채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통상 경기부양을 기대하는 정권 초기에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이에 새 정부가 제시한 부문별 자본규제 방안은 이전 문재인 정부의 단선적 수단에서 벗어나, 신용 흐름의 조율을 통해 비생산적 대출을 구분해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미 서울의 집값은 진보 정부의 출범이 기정사실화된 이후부터 급속도로 상승했다. 과거 보유세인상이 임대료 폭등으로, 양도세인상이 매물 잠금과 신고가 경신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아프게 경험했던 정부가 이번에는 공언한 대로 세금 대신 신용 경로의 관리를 보다 정교하게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부문별 경기대응 완충자본(SCCyB)'이나 '부문별 시스템 리스크 완충자본(sSyRB)'은 은행이 부동산 경기 과열 등을 대비해서 특정 부문에 추가 자본을 적립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금리를 높이지 않고도 은행의 대출 여력은 줄어들고 대출 심사기준이 엄격해진다. 신용의 유입은 조절하되, 실물경제 전반에는 부담을 덜 지우는 방식이다.
또 다른 방안은 '주택담보대출 위험가중치 하한선'의 상향이다. 은행이 예금자의 예금 상환에 대비하여 보유(한국은행에 예치)하는 것이 지급준비율이라면, 위험가중치는 반대로 은행이 대출을 회수하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일정 비율의 손실완충 자본을 더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령 주택담보대출의 위험가중치는 약 15%, 돈 떼일 염려가 없는 정부나 공공기관 상대로는 0%, 상대적으로 위험한 신용대출이나 PF 대출의 경우 100%가 넘는 식이다. 위험가중치가 높아지면 은행은 같은 금액을 대출할 때 더 많은 자기자본을 적립해야 하므로, 금리 인상 없이도 자연히 주담대 공급이 억제된다. 이는 대출 총량을 줄이는 효과와 함께 금융권 자원이 기업 대출 등 실물부문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 같은 감독행정의 영역은 국회의 입법 없이도 금융당국의 재량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정책의 민첩성을 높인다. 다만, 이러한 규제로 인해 제한된 대출 여력이 우량 담보인 서울, 강남 아파트로만 쏠려 양극화를 키울 수도 있기때문에, 지역별 주택 공급 확대정책과 병행하는 등 보완책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금융권에 대한 세제 개편도 선제적으로 병행해야 한다. 은행과 제2금융권은 고금리 시기에 예금-대출 마진을 통해 고수익을 얻었지만, 이에 대한 조세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과거 외환위기 시기에 사례가 있었던 특별부담금이나 초과이익세 같은 형태의 증세를 도입하면 조세정의 측면에서 대중적 지지를 기반으로 유동성을 흡수하고 신용 팽창의 책임도 분담시킬 수 있다.
금리의 고통도 세금의 부작용도 모두 겪은 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핵심은 자본이 필요한 곳에 적절히 흘러가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단순한 긴축도, 맹목적 경기부양도 아닌, 자산 쏠림을 조정하고 생산적인 흐름으로 신용을 전환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규제와 유인의 정교한 조합, 질서있는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수준 로이에아시아 컨설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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