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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과중심' R&D개편, 스타트업 왜 울고 있나

산업부 최빛나 기자

"시장에 진입도 못했는데, 시장성을 증명하라고 한다"

 

지난달 한 기술기반 스타트업 대표는 정부 과제에 탈락한 사연을 이렇게 전했다.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차세대 소재를 개발하는 이 회사는 기술 검증 단계에 있었다. 논문도 특허도 있었지만, '투자 유치 실적 없음'이라는 이유로 신청 단계조차 넘지 못했다. 그가 말한 "정부 과제가 아니라 정부 공모전"이라는 표현은, 현재 현장의 공기를 그대로 옮긴 말이었다.

 

2025년부터 정부가 추진 중인 연구개발(R&D) 체계 개편은 단순한 예산 조정이 아니다. 정책 철학의 방향이 기술에서 '성과'로 완전히 전환되고 있다. 민간 연계와 투자 유치, 수요기업의 확약 등 사전 검증 조건이 대거 포함된 이번 개편은, 사실상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에만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같은 변화는 예산 효율성과 성과 회수를 강조하는 최근 정부 재정 기조와 궤를 같이한다. 정부 입장에서 '확실한 성공 가능성'을 좇는 전략은 타당해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중소벤처기업부는 "성장이 가시화된 기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선순환을 위한 구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방향이 결국 기술의 싹이 자라기도 전에 흙을 덮어버리는 구조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정부 과제가 스타트업에게 '첫 번째 자금'으로 작용해왔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투자를 받은 이후에야 접근 가능한 보조금"이 돼버렸다는 자조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시장성 검증이 완료된 뒤에야 지원할 수 있다는 구조는, 사실상 중복된 잣대를 두 번 들이대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기술을 가진 기업은 민간에서 외면당하고, 정부 과제에서도 밀려나는 '이중 소외' 상태에 놓인다. 이런 현상은 최근 정부 R&D 과제의 평가 기준에서도 확인된다. 상당수 사업이 기술 완성도나 혁신성보다 '시장성과 투자 유치 여부'에 높은 점수를 배정한다. 기술력 하나만으로 승부하려는 스타트업에겐 진입 장벽이 높아졌고, 기술은 여전히 미완인데 외형 평가만 거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 R&D가 '보조금'이 아닌 '사후 포상금'처럼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정부는 뒤늦게 '기술역량 중심 트랙' 신설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트랙 추가만으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애초에 '민간 책임 강화'라는 정책 기조가 기술 기반 기업의 성장 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설계된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기술은 시장보다 늦게 피는 꽃이다. 투자자들이 꺼려하는 리스크를 정부가 감당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기술생태계의 기반은 빠르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건 명분 있는 예산 관리가 아니라, 시장보다 기술을 먼저 믿는 공공의 시선이다.

 

정부 R&D는 단순한 성과 중심 자금이 아니라, 국가가 미래에 '베팅'하는 유일한 정책 수단이다. R&D가 진정한 성장 동력이 되려면, 기술력 하나만으로도 도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는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 같은 '성과 만능주의'는 결국 기술 기반 스타트업의 사기를 꺾고, 한국의 혁신 역량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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