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人 머니 산업 IT·과학 정치&정책 생활경제 사회 에듀&JOB 기획연재 오피니언 라이프 AI영상 플러스
글로벌 메트로신문
로그인
회원가입

    머니

  • 증권
  • 은행
  • 보험
  • 카드
  • 부동산
  • 경제일반

    산업

  • 재계
  • 자동차
  • 전기전자
  • 물류항공
  • 산업일반

    IT·과학

  • 인터넷
  • 게임
  • 방송통신
  • IT·과학일반

    사회

  • 지방행정
  • 국제
  • 사회일반

    플러스

  • 한줄뉴스
  • 포토
  • 영상
  • 운세/사주
오피니언>칼럼

[홍경한의 시시일각] 기다림

/홍경한 미술평론가

미국 작가 애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인상파들이 대자연과 인물을 색과 점으로 분해하여 빛의 찬란함과 환희를 담아내려 했던 것과는 달리, 마르지 않는 빛줄기 끝에 황량하고 공허한 도시를 올려놓았다. 여러 인물들을 독백하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시켜 인간의 실존적 의미와 존재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했다.

 

거의 100년 전 그림들이 드물지 않지만 지금 봐도 그의 작품들은 명상적이고 상징적이며 여백을 품고 있다. 이 중 정서를 공유하는 여백은 수평 및 대각선을 따라 흐르는 긴장되면서도 안정된 구성, 건조한 분위기에 포박된 무표정한 형상들에 기인한다. 또한 빛과 어둠이 교차하거나, 밝은 색채 속 외로운 인물 등의 상반된 이미지는 모호하고 공허한 '관계'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호퍼 그림의 특징이랄 수 있는 고독과 외로움, 소외감이나 번민, 허무함은 시대의 영향이 컸다. 그의 회화가 형성되던 1930년대는 미국이 경제적으로 세계 선두를 달리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문제는 도시의 팽창과 물질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그에 따른 인간 소외라는 부작용을 낳았고, 기계화로 인해 사람들은 나날이 심리적 공황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심화되어가는 빈부격차, 인간성의 상실에 따른 도시의 무미건조함은 더 이상 일상을 즐겁고 경쾌하지 않도록 했다. 물질은 차고 넘쳤지만 인간 소외는 갈수록 깊어졌고, 매체의 발달로 관계의 기회가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정확히 목도해온 호퍼는 그 심상들을 고스란히 캔버스에 실어 날랐다. 일례로 그의 1926년 작품 에선 한 건물 앞에 한 남성이 홀로 앉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에게 일요일은 평일의 공허함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듯 보인다. 여기서 우린 갈 곳 잃은 사람들을, 주말에도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이들을 그려본다. 인적 없는 거리를 보며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도시인들을 떠올린다.

 

(1952)은 더욱 강렬하다. 침대에 앉은 여성이 창밖의 아침 햇살을 바라보고 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에는 어떤 기대보다는 정적이 서려 있다. 정적의 실체는 우리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느끼는 일순의 '텅 빔'이다. 숱한 알림과 메시지로 가득한 디지털 세계로 연결되기 전, 진짜 자신과 마주하는 그 적막한 순간 말이다.

 

1927년 뉴욕 렌갤러리에서 열린 호퍼의 두 번째 개인전 출품작 (1927) 역시 오늘날 우리가 카페에서, 식당에서 매일 목격하는 장면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인들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았다. SNS에서는 수천 명의 '친구'와 연결되어 있고, 메신저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쏟아지지만, 정작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사람은 찾기 어렵다. 사실상 우린 그 어느 때보다 짙게 고립되어 있는 셈이다.

 

호퍼가 포착한 것은 하나의 상황이 아니다. 차갑고 이기적이며 냉혹한 현실을 화폭에 새겼고, 황량하고 거대한 도시와 그 도시에 묻혀 실존을 상실해가는 인간을 통해 존재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말했다.

 

더불어 그는 인간 조건 그 자체를 주제로 삼았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떨어져 살아가는 인물들의 정신적 갈등을 묘사했으며, 한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는 사람들을 비롯해 출구 없는 다수의 삶을 기록했다. 그 삶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읽는 이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호퍼의 그림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기다림'이다. 그의 그림엔 삶의 극적인 사건도, 사고도, 죽음도 등장하지 않으며, 희망을 상징하는 아이도 없다. 그러나 저마다의 무의식 속 언저리에 자리 잡고 있는 기다림이 있다. 그리고 기다림은 곧 누군가 다가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홍경한 미술평론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Copyright ⓒ 메트로신문 & 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