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조8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이 표류하고 있다. 대한민국 차세대 해군력의 핵심 프로젝트가 행정 혼선과 정치 개입 속에 방향을 잃었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사업의 총괄 기관이지만 이제는 조정자도, 결단자도 아닌 이해관계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관료 집단으로 전락했다.국방행정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흔들리는 사이, 수년간 준비된 미래 전력 사업이 멈춰 섰다.
논란의 중심은 방사청의 '보안감점 연장'이다. 방사청은 HD현대중공업의 보안 벌점 만료 시점을 올해 11월에서 내년 12월로 돌연 연장했다. 스스로 유지해온 '최초 형 확정일로부터 3년 적용'이라는 명확한 기준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이다. 행정의 일관성과 법리적 신뢰가 동시에 무너진 결정이었다.
더 큰 문제는 '보안감점 연장' 과정이다. 발표 직전 여당과 국방부 방사청이 비공개로 협의했고, 여당 의원에게 'HD현대중공업 보안감점 검토보고'가 제출됐다. 이후 방사청은 보고서와 동일한 내용으로 연장을 공식화했다. 행정이 정치에 종속된 전형적 사례로 국방 행정의 독립성과 신뢰가 정치의 흐름에 따라 흔들린 셈이다.
KDDX는 단순한 조선사업이 아니다. 함정 설계, 전투체계, 레이더, 추진체계 등 방산 기술의 집약체로, 우리 해군의 자주전력 상징이자 방산 수출 경쟁력의 바로미터다. 그러나 방사청은 조선업계 간 갈등을 조정하지 못한 채 결정을 미루며 사업 일정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수의계약이냐, 경쟁입찰이냐' 논란이 이어지는 동안 해군의 전력 공백은 커지고, 산업의 동력은 식어가고 있다.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대립은 결국 방사청의 무책임이 불러온 결과다. 주무기관이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자, 정치권이 개입하고 여론이 흔들리며 사업의 주도권이 사라졌다. 일부에서는 '정조대왕급 추가 건조' 같은 대체 시나리오가 거론되지만, 이는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다. 행정 혼선이 이어진다면 차세대 구축함 개발은 '국산 기술 자립'이라는 목표와 멀어질 뿐이다.
방사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정치의 언어가 아닌 기술과 절차의 언어로 돌아가는 것이다. 행정의 책임 회피와 시간 끌기로는 신뢰를 되찾을 수 없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특정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공정하고 일관된 국방 행정이다. 방사청이 원칙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KDDX는 '국산 구축함'이 아니라 '국방 신뢰의 침몰선'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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