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제약바이오 벤처기업을 글로벌 수준의 '블록버스터' 창출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다. 중소벤처기업부와 보건복지부가 손을 잡고 창업부터 임상, 글로벌 진출에 이르는 전 주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이른바 'K-바이오 성장 사다리'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중기부와 복지부는 24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합동 정책간담회를 개최하고 '제약바이오벤처 육성 전주기 협업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은 올해 1월 대통령 주재 국가창업시대 전략회의의 후속 조치로 마련됐다.
정부가 이처럼 파격적인 협업에 나선 것은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 때문이다. 2023년 기준 글로벌 의약품 시장은 약 1조4000억 달러 규모로, 반도체 시장의 3배에 달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도 지난해 의약품 수출 100억 달러 돌파, 기술수출 21조원 달성 등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장기간·고비용이 소요되는 신약 개발 특성상 중소 벤처들이 임상 단계에서 자금난(죽음의 계곡)을 이기지 못하고 좌초되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양 부처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혁신자금 공급(스케일업) ▲개방형 혁신과 성과 창출(스피드업) ▲혁신 생태계(레벨업) ▲현장 중심 협업형 정책 설계(시너지업) 등 이른바 '4업 전략'을 추진한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자금 지원의 '연속성'이다. 중기부 대표 창업지원 프로그램인 팁스에 선정된 기업이 복지부의 'K-바이오헬스 글로벌 진출 패키지'나 '임상 R&D' 지원을 받을 때 별도의 중복 평가 없이 지원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한다.
또 기술평가 기반의 맞춤형 보증을 공급해 벤처기업의 단기 유동성 애로를 완화하고, 중기부와 복지부의 정책펀드를 연계해 신약 개발 단계별로 끊김 없는 투자가 이어지도록 할 방침이다.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도 강화한다. 미국 보스턴에 설립된 세계 최대 바이오 벤처 허브인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 등 해외 유망 거점과 연계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인공지능(AI) 기반 벤처와 제약사의 공동 R&D를 신설한다. 신약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단축해 신약개발 초기 단계에서 협업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정부는 이번 협업과 함께 오는 2030년까지 제약바이오 기술수출액 30조원을 실현하며 K바이오 의약 글로벌 5대 강국 진입을 현실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국내 제약·바이오 벤처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도 자금과 협력 파트너를 찾지 못해 성장이 더딘 경우가 많다"며 "국내 유망 벤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 역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정 장관은 "과거 제네릭의약품 중심에서 바이오시밀러,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등을 거쳐 이제는 혁신 신약개발 국가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라며 "비임과 임상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전주기 협업 체제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부처 간 협업을 기반으로 한 성장 사다리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발표 현장에서는 과감한 규제 혁신과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 중인 문지숙 리코드 대표는 "일본의 경우 희귀 난치병 치료를 위해 국가 차원에서 임상 절차를 파격적으로 지원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기술력이 충분함에도 규제 때문에 가로막힌 경우가 많은데 중기부의 발굴 능력과 복지부의 인프라가 결합해 규제 샌드박스 등 혁신적인 지원이 신속히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강충길 올릭스 사장 또한 "신규 모달리티 등 첨단 바이오 부문에 대한 국내 기준이 글로벌 표준에 비해 다소 보수적이고 신중하다"며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국내보다 해외 임상을 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제약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춘 신속한 승인 규제 개선과 함께, 통계학자, 의사 등을 충원하는 등 전문성 제고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벤처 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자본시장 규제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지난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는 "최근 기술특례상장을 위한 기술 평가 기준이 일관되지 않아 현장의 혼란이 크다"며 "글로벌 빅파마로 기술 이전을 성공시킨 기업조차 상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부처 차원에서 금융당국과 조율해 상장 사다리를 명확히 해달라"고 건의했다.
중기부와 복지부의 지원으로 성장해 상장에 성공하더라도 이후 마주하는 '법차손(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 등 상장 유지 요건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업계는 입을 모았다.
이승주 오름테라퓨틱스 대표는 "상장 유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오히려 R&D 투자를 줄이거나 무리한 유상증자로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바이오 같은 신성장 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현실화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지원 대상을 벤처에만 한정 짓지 말고, 전통적인 중소 제약사들을 혁신의 파트너로 적극 끌어들여야 한다는 '역발상' 제언도 주목을 받았다.
김정현 솔리더스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대형 제약사와 달리 중소 제약사들은 R&D 실패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워 혁신을 주저한다"며 "이들이 CVC나 공동 펀드를 통해 벤처에 투자하고 그 과실을 나누는 '자본 중심의 혁신 모델'을 정부가 설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분야의 성장을 위해 '데이터 개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알고리즘을 검증할 수 있는 양질의 제약·의료 데이터 접근이 여전히 어렵다는 점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가 요구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과기부 등 관련 부처까지 참여하는 '범부처 AI 바이오 R&D' 추진 의사를 밝히며, "중소 제약사의 수요를 발굴해 스타트업과 연결하는 '챌린지 사업'을 통해 부처 간, 기업 간 칸막이를 동시에 허물겠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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