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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기/전자

<1>42년의 베팅, 삼성은 왜 반도체를 택했나

이병철의 결단, 가전 삼성을 바꾸다
오일쇼크 위기 속 1974년 첫 씨앗
1983년 도쿄 선언, 반도체 승부수
‘3년 안에 실패’ 냉소 뚫은 42년

3대에 걸친 반도체 경영의 시간. (왼쪽 하단부터) 1972년 장충동 자택에서 이재용 회장, 이병철 선대회장,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 고(故)이인희 한솔그룹 고문, 고(故)이건희 선대회장./삼성전자
1987년 8월, 3라인 착공식.(가운데 왼쪽부터) 이건희 선대회장, 이병철 선대회장./삼성전자

TV와 가전을 만들던 전자회사가 어떻게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정점에 올랐을까.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대 핵심 메모리 시장을 이끄는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자리 잡으며 지난 1분기에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글로벌 업계 1위 복귀를 노리는 삼성 반도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42년 전 그룹의 운명을 바꾼 선택에서 출발했다.

 

그 결실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잠정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43조6000억원)을 한 분기 만에 넘어섰다. AI 확산에 따른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급증이 직접적 배경으로 꼽히지만, 이 실적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1983년 2월 8일로 닿는다. 삼성의 운명을 바꾼 '도쿄 선언'이 있던 날이다.

 

삼성 반도체의 시작은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1974년 삼성은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며 반도체 산업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자체 기술은 전무했고, 사업은 그룹 내에서도 존재감이 미미했다. 이 시기는 사실상 '미운 오리'로 불릴 만큼 그룹 내 부담으로 여겨지던 시기였다. 한동안 반도체는 미래 성장의 씨앗이었지만, 동시에 그룹의 짐으로 인식되던 사업이었다.

 

전환점은 오일쇼크였다. 당시 경영난을 지켜본 이건희 회장은 전자부문의 생존 조건이 핵심 부품의 자급에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 시기를 계기로 고부가가치 첨단 하이테크 산업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 완제품을 조립해 판매하는 구조만으로는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고, 결국 핵심 부품을 직접 만들지 않으면 전자사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당시 그룹 내부에서는 "전자부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핵심부품인 반도체의 자급"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공식적인 결단은 이병철 선대회장의 몫이었다. 당시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먼저 진출해 있던 고(故) 김완희 한국반도체 사장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냉정한 거절을 받았다. 역설적으로 이 일은 반도체 진출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천연 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한계를 첨단기술로 극복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가장 위험한 산업으로 꼽히던 반도체에 그룹의 미래를 걸었다. 외부에서는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 반도체는 무리"라는 회의론이 이어졌고, 재계 일각에서는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냉소도 뒤따랐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를 정면 돌파의 신호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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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64K D램 개발 성공./삼성전자

1983년 2월 8일, 이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그룹 차원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이다. 당시 선언문에는 삼성의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빈약한 우리로서는 고도의 첨단기술 개발이 시급한 과제"라는 문구는 당시 삼성의 산업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원 없는 나라의 생존 전략으로 반도체를 택한 것이다.

 

수많은 첨단 산업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를 선택한 배경도 분명했다. 삼성은 이미 TV와 가전 사업을 통해 대량생산, 공정관리, 원가 절감, 수율 확보에 강점을 갖고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 특히 D램은 바로 이러한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산업이었다. 낯선 첨단 산업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삼성의 제조 역량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였다.

 

승부수는 예상보다 빠르게 결실을 맺었다. 삼성은 1983년 5월 64K D램 개발에 착수했고, 불과 6개월 만인 같은 해 12월 1일 국내 최초, 세계 세 번째로 개발에 성공했다. 미국과 일본에 10년 이상 뒤져 있던 기술 격차를 단숨에 좁힌 사건이었다. 이는 삼성 반도체 도약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특히 이 같은 성과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한국 산업지도의 방향을 바꾼 분기점이 됐다. 이후 삼성은 256K, 1M, 4M D램으로 세대 전환을 선점했고, 1992년 D램 세계 1위, 1993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에 올랐다. 불과 10년 만에 후발주자에서 세계 정상으로 올라선 것이다. 1분기 57조2000억원의 잠정 영업이익은 단순한 호실적이 아니라, 42년 전 생존의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까지 이어진 결과다. 삼성 반도체의 시작은 돈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고, 그 선택이 결국 한국의 산업지도를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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