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개혁은 필요하다. 과잉 비급여를 줄이고, 계속 오르는 보험료 부담을 낮추고, 실손이 의료 왜곡의 통로가 되는 구조를 손보자는 방향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 개혁의 다음 수단으로 '계약 재매입'이 거론되는 순간 질문은 달라진다. 실손을 정상화하겠다면서 왜 가입자에게 먼저 "좋은 계약을 정리하라"고 말하는가 하는 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실손보험 개혁방안에서 약관변경 조항이 없는 초기 가입자 약 1600만명이 원하는 경우 계약 재매입을 통해 보상을 받고 기존 계약을 해지한 뒤 신규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금융위는 계약 재매입과 비급여 보장 범위 변경 등을 포함한 구체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큰 방향은 던졌지만 정작 가입자가 가장 궁금해할 기준과 원칙은 여전히 흐린 상태다.
문제는 이 구상이 소비자에게 '선택권 확대'보다 '선택 압박'으로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1세대와 초기 2세대 실손은 재가입 주기가 없거나 보장 조건이 지금보다 넓은 경우가 많다.
특히 의료 이용이 적은 가입자일수록 일정 보상금을 받고 갈아탈 유인이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우량계약부터 빠져나가면 남은 계약의 손해율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업계가 반대 의견을 내고, GA 채널의 부당 승환이나 절판마케팅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을 보면 이 사안은 단순한 제도 정비가 아니라 또 다른 혼선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더 찜찜한 대목은 개혁의 방식이다. 실손보험의 문제는 과잉진료와 낮은 자기부담, 왜곡된 비급여 이용 구조에서 시작됐는데 해법은 정작 계약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론 당국 입장에선 재가입 주기가 없는 옛 계약을 그대로 둔 채 새 상품만 내놓아서는 구조 개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약을 되사는 방식'이 곧바로 정당성을 얻는 것은 아니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명분과 그 개혁 비용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나눌 것인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상화가 필요하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계약을 되사는 방식의 우회로를 서두르는 것이 아니다. 재매입 보상 기준을 어떻게 정할지, 어떤 계약자에게 유리하고 불리한지, GA 채널의 부당 승환을 어떻게 막을지, 전환 이후 남은 계약의 손해율 악화를 어떻게 완충할지부터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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